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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9.04.19][기고] 美中 전략경쟁과 북핵 사이에 낀 한국

  • 김흥규
  • 2019-04-23
  • 564

[기고] 美中 전략경쟁과 북핵 사이에 낀 한국


최근 한반도 안보 정세의 흐름이 간단치 않다. 남북 관계, 비핵화, 4강 외교 등이 모두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국내 이반 현상도 심각해 보인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미·중 입장에서는 그 하위 개념으로 자리할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 북한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 구조의 제약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우리 노력·희망과는 달리 북한 비핵화 전망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지나치게 희망적인 사고나 낙관적인 태도는 곤란하다.

물론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매도 위주의 비판도 그리 건설적이지는 않다. 정부는 남북 관계를 넘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기존 4강 외교 역량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지(智)를 모아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원로들과 명망가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고, 제안을 듣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거대한 미·중이 서로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혹은 상대에 대한 압박을 통해 굴복을 받아낼 개연성은 거의 없다. 향후 국제 관계는 미·중 전략경쟁의 결과로 '팍스아메리카'나 '팍스시니카'가 아니라 미·중이라는 거대한 두 축을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양분(decoupling)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중 전략갈등이 보다 심화할수록 의존형 노출(exposed) 국가인 한국은 선택의 압력에 더 크게 직면할 것이다. 이 양분화되는 시기에 한국은 미·중에 대해 성급한 편향성보다 신중한 복합균형 정책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 시기 한반도와 관련해 미국의 최우선적인 선호는 어느 정도 핵을 보유한 친미적인 북한이 중국을 견제하는 구도일 것이다. 차선이자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의 핵 보유 상황을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의 현대화, 동아시아 지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 우주의 무기화 정책을 진행하는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도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다만 북한에는 지속적인 압박과 소통을 통해 핵·미사일이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상황은 최대한 억제하려는 전략을 쓸 것이다.

차차선은 동아시아 분할 방안이다. 신냉전과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영향권과 생활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필요시 일본의 핵무장론이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보다 완벽한 북한 비핵화(FFVD) 정책과 모든 재래식 위협을 망라한 북한의 위협을 철저히 제거한다는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반도와 일본이 중국 영향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최적의 시나리오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우위와 생활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친미화를 반드시 방지해야 하고, 동시에 의미 있는 수준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선은 동아시아 분할 방안이다. 북한의 대중 종속화, 한국의 중립화, 일본의 복합외교 수립을 추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차선이자 현실적인 방안은 현상 유지로, 미·중 전략경쟁에 다른 변수가 작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 대중 동맹 결속이 확고해지는 것이다.

향후 정세는 미국은 차선에서 차차선의 선택 사이, 중국은 차차선에서 차선의 선택 사이를 오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모한 대북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한국 대북 정책은 대항적 공존, 비대항적(경쟁적) 공존, 협력적 공존, 평화적 공존이라는 선택이 존재한다. 현 상황에서는 '대항'성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대항적 공존'을 위주로 하되 '비대항적(경쟁적) 공존'으로 진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에 대해서는 자강에 기반한 '최소 억제전략'이 필요하다. 아무리 뜻이 높고 마음이 바쁘더라도 때로는 국론을 결집하고 천천히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