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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세계일보 2020.11.05] [세계와우리] 실낙원과 정글 국제정치 도래

  • 김흥규
  • 2020-11-08
  • 259

美 대외정책 분야 강화에 소홀
세계 이끌 외교 지식·지혜 부족
中 도전에 美 아직 해법 못찾아
韓 정치인도 상황 인식·준비를


미국 대통령 선거는 참 말도 많고, 격렬했고, 혼란스러웠다. 투표는 마감되었지만, 여진이 크다. 이번 선거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지 향후 미국 국내정치가 혼돈에 돌입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것 같다. 미국 정치는 핵심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그간 미국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도달했던 그 품위와 문명의 수준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자유주의, 정치 게임의 규칙, 관용, 여유는 점차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 자리를 분노와 증오가, 백인 인종주의가,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미국 민족주의가 대체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예전의 미국 모습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느 후보도 미국의 내적 잠재력을 재생할 비전과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은 세계 패권국가로서 누구에게도 도전받지 않는 권력, 공간, 자원을 소유했고, 그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미국 패권에 도전했던 러시아, 독일, 일본은 각기 그 자명한 한계를 안고 있어 미국에 굴복했다. 외부적인 자극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부적인 역량 강화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고 지극히 자원 소모적이었다. 대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대외정책 분야에서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은 항상 뒷전이었다. 어느 지도자도 세계를 이끌 외교적 지식과 지혜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이 지닌 거대한 패권에는 이러한 결핍이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그 비용은 금방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기존의 도전세력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무지와 자만의 대가가 생각보다 크다. 그 규모나 역사와 문명의 깊이, 거기에서 나오는 잠재적 역량은 미국과 서구의 상상과 일반 이론을 넘어섰다. 중국의 도전에 미국은 아직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가 제시한 새로운 해법은 미국 우선주의, 보호주의, ‘전략적 경쟁’으로 규정한 적대적인 대중 관계의 추진이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국내적 변화를 감지하고 있어 바이든이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구시대적인 정책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대중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라는 정원 가꾸기가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버거우니 이제 내 집만이라도 잘 가꿔 살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상황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바꾸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염원은 있어도 이를 실행할 집안 사정이 여의치가 않기 때문이다. 내부 체질개선을 위한 세제, 의료보건, 건강보험, 금융, 교육 분야 등에서의 개혁 문제가 첩첩이 쌓여 있고, 그 이면에는 인종 갈등, 제도와 개인들 간의 불신으로 곪고 있다.


정원은 여간 잘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쉽사리 자라난다. 그리고 관리인이 없으면 순식간에 무성해진다. 그대로 놔두면 곧 정글과 같은 곳으로 변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 과정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황폐해지고 무수한 잡초들이 자라는 정글과 같은 환경이 실낙원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국 역시 대선에서 대외정책 분야가 표가 안 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정치지도자가 무지하거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나서게 된다. 그간 잘 가꿔진 정원에서의 삶에서, 외교는 치장거리 정도로 생각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누구든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글화되어 가는 국제정치 환경에서 이러한 무지와 준비 부족은 얼마나 그 대가를 치러야 할지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버젓한 대갓집이 있는 미국은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 있겠지만, 한국은 그리 사치스러운 처지는 아니다. 한 번의 오판으로도 국가 존망이 어려워질 수 있는 환경에 직면한다. 현재 대선 주자감으로 거명되는 정치인들이 과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역경을 타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꾸만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