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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1.05.13] <김흥규의 Deep Read>文, 김정은과 회담 ‘마지막 승부수’ 걸 땐… 한미·한중관계 ‘진퇴양난’

  • 김흥규
  • 2021-05-27
  • 286
오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다. 한·미 관계를 가늠하는 주요 무대임이 틀림없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집착과 ‘대북 희망 고문’이 한국을 진퇴양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또 미국이 진행 중인 ‘사드 업그레이드’ 작업은 한·중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동맹을 우선하면서도 한·미 관계를 한 차원 다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고뇌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이든 시대의 국제정세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중 전략경쟁은 도널드 트럼프 시기의 그것보다 더 고도의 수 싸움에 들어간 듯하다. 트럼프 당시의 대중 정책은 전형적인 서구 강대국 국제정치였다. 우위에 있는 미국이 중국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양상이었다. 중국은 처음에는 그 진의와 위세에 놀라 움츠렸지만, 이내 미국 대중 전략의 취약성과 조루증을 인지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대유행은 미국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을 오히려 강화시켰다. 트럼프 자신도 그 희생물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냉정하고 집요하다. 중국을 ‘적’으로 대하지 않는 대신, ‘최대의 지정학적 시험’으로 정의했다. 중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인권·가치 등의 기치를 최대한 올리고 군사적 압박을 병행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장기간의 심각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향후 ‘세력 전이’를 가져올 핵심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발전을 최대한 저지하려는 생각도 분명하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냉전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예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도 인정한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제시한 미국의 8대 과제 중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대부분 국내정치적인 어젠다와 관련돼 있다. ‘대중국 대응’은 8번째고, ‘동맹의 복원’은 그보다 앞선 5번째다. 미국의 힘만으로는 중국을 억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민주주의 가치와 동맹 복원을 통해 우방국의 지원을 받아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를 헤쳐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좋든 싫든 간에 미국 경제는 중국과의 상호의존적인 교역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완전한 탈동조화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2년 뒤인 2023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실리중심적이거나 혹은 내부지향적인 세력이 득세할 수도 있다. 미국 대외정책의 현상적인 측면만을 보지 말고 내부의 동력도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험대에 오른 한·미 관계 바이든 시대 한·미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무엇보다 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집착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북 대화 촉진을 주요 어젠다로 삼으려 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에서 북한이 중국을 적대시할 미국과 전략적 담판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의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핵·미사일 전략의 본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며 한국의 생존을 현실적으로 위협한다. 그렇지만 문 정부의 ‘대북 희망 고문’은 집요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 등 국내정치에서 난국에 처한 문 정부가 가장 극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내년 2월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게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거나 평화체제선언을 하는 극적인 이벤트를 기대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 정권으로서는 문 대통령이 고집스레 고수한 대북 ‘평화적 공존 정책’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 물론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문 정부는 이를 위해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단적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이 필요하다. 중국은 미국의 한국 국내정치나 한·중 관계 개입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시 주석의 방한을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집착은 한국을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고, 미국과의 관계에도 큰 어려움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문 정부의 기대에 쉽게 호응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 내 사드를 인도·태평양 미사일방어체계에 연동시키는 작업 역시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은 올해 안에 ‘사드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중국이 강조한 ‘3NOs’ 즉 ‘추가 배치·대중 미사일방어체계 연동·한미일 군사협력 불가’라는 ‘3불’을 지키기란 불가능하다. 사드 업그레이드가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올 하반기 한·중 관계는 파국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대선을 앞둔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 효과도 클 것이다. ◇한국의 외교전략 한국의 역대 정권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미 동맹을 대외 전략의 최우선순위로 삼아왔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집권세력 내 일부의 파열음이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도 미국의 제한선 밖으로 벗어난 적은 없다. 문 정부의 핵심 인사가 최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 같은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한 정황도 있다. 이는 북에 큰 불만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한·미 관계의 현주소이자,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갖는 현실적인 장애다. 한·미 관계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동맹보다도 강력한 동맹이다. 이처럼 군사적으로 제3의 적에 대응할 준비가 잘된 동맹은 이 지구 상에 없다. 북핵 위협과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 한·미 관계의 안정성은 우리의 전략적 자산이다. 한국은 또한 통상국가이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낀’ 국가다. 개방성·시장·국제협력의 확대가 국익에 필수적이다. 한국은 미국이 말한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다. 이 축이 빠지면 미국도 대단히 곤혹스럽다. 그래서 한·미 동맹은 쿼드(미국·인도·호주·일본 등 4개국 협의체)보다 상위 개념이다. 미국은 ‘중국 대응 정책’ 이전에 동맹으로서 한국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국익을 지켜내면서도, 다른 차원으로 한·미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고뇌해야 한다. 중국에도 한국은 핵심축이다. 한국은 이런 환경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과거 고려 시대 초기 거란 동맹과 송나라와의 친교 사이에서 고뇌했던 치열함과 지혜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