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기고문

[세계일보 2021..02.25] [세계와우리] 전략·외교 부재의 한국

  • 김흥규
  • 2021-03-22
  • 286

美·中, 총검 없는 전략경쟁 돌입
北은 생존 걸고 팽팽한 수싸움
文 정부, 국제 정서 현실성 결여
생존 위한 새 전략 머리 맞대야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미·중 전략 경쟁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 비록 트럼프 말기처럼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마치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들어선 것처럼 대하지는 않지만 그 적대감과 결기는 결코 줄지 않았다. 바이든이 당면한 도전은 크게, 내전양상에 가까운 미국정치의 분열과 갈등, 미·중 전략 충돌, 국제적 리더십의 실종이다. 바이든은 이에 대한 답으로 미국의 단합, 미·중 전략 경쟁으로의 복귀, 가치 중시와 다자주의에 기반한 미국 리더십의 회복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중국처럼 고단수의 강력한 상대와 전략경쟁을 해본 적이 없다. 트럼프 시절 미국이 입은 내상이 엄중하다.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표방하는 이면에는 진퇴양난에 처한 미국의 외교안보 환경을 잘 말해준다. 당장은 과도한 목표설정을 억제하고 현실적이면서 실용적인 방식의 외교를 추진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미국도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전례없는 적개감을 지니면서도 지극히 신중한 태도로 대중정책과 대북정책을 숙고 중이다. 당분간은 현실적인 제약상황을 고려하면서 미국식의 도광양회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중국의 정책은 정책결정 과정의 특성상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이미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그 이면에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은 이에 대비하고 있지 못하다. 드러난 것은 시진핑 주석이 미·중 전략 경쟁을 ‘장기전’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미·중은 이미 총검을 쓰지 않는 전쟁에 돌입해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이 시기를 “난관 앞에 제 힘으로 서느냐 그대로 주저앉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폭풍우 앞에서 최대의 전략적 인내와 신중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

한국 외교는 이 ‘절체절명의 시기’라는 상황인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북한이 전술핵 보유를 주장하는 상황에도 정부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국회는 거침없이 ‘대북 전단살포금지법’을 통과했다. 대통령은 조만간 북미, 남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하고, 통일부 장관은 철도·도로 건설·보건 협력을 추진하자고 한다. 올해 안에 남북정상 간 합의를 이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한다. 현 국제정세에 대한 객관적 상황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마저 든다.

 아무리 희망과 의지는 가득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해도 때가 있는 법이다. 미·중이라는 고수들과 북한이 생사를 건 팽팽한 수싸움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예 그 민감성과 긴박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여된 것처럼 부적절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악수들을 거침없이 두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리뷰가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수싸움을 망쳐버릴 수도 있는 한국의 이러한 행태들에 대해 매우 거칠게 반응한다. 한·미동맹의 위상도 크게 저하되었다. 한·일관계는 거의 단절상태이고, 미국은 대놓고 한·일관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서 친중 정부라 비난받는 문재인정부에 대해 중국 측의 평가마저도 인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중국의 푸단대 정세분석 보고서는 한국 정부를 아예 대놓고 “무의지·무기력·역부족 빠졌다”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지금은 외교전쟁의 시대이다. 고수들의 살기에 가득한 검기와 수싸움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과 외교 부재의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과 같이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는 최선의 수를 두어도 어려운 형국이다. 북한 문제는 이제 당분간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한다. 북한도 한국의 제의를 받을 수 없다. 국제정세의 수가 너무 복잡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향후 한국의 생존이 더 걱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방, 외교, 통일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을 소집해 한국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전략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지지자로서 안타깝지만 차라리 무지와 무능을 인정해야 수가 보인다. 한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미·소 냉전을 앞두고 대응책에 골몰했던 조지 케넌(George Kennan)의 역사적 고뇌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