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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2021.02.23] 미·중 ‘화산논검’에 선택의 기로 내몰린 한국

  • 김흥규
  • 2021-03-22
  • 289
미국 주도 ‘쿼드 플러스’ 가입 압박
어떤 선택 해도 다른 편의 전면적 보복 받게 될 우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중(對中) 정책은 현재 리뷰 과정 중이어서 아직 그 전모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이든 시대에도 대중 압박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경쟁(Strategic Competition)’으로 규정했다. 트럼프 집권 말기에는 중국을 체제 경쟁자이자 ‘적’과 같이 규정하면서 ‘전략적 충돌(Strategic Collision)’ 직전까지 갔다.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왔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 대신 그 지리적 공간을 확대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제시되었다. 그 전략 구상안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의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거기에 더해 베트남·뉴질랜드·한국을 포함한 ‘쿼드 플러스’ 형성의 제안이 나왔다. 경제적으로는 경제변영네트워크(EPN)의 형성, 첨단 기술 보안을 위한 클린 네트워크의 구상도 제기됐다.

그러나 동맹과 우호국을 구분하지 않고,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를 표방했던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국제적으로 큰 공감대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트럼프 집권 말기인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개최된 쿼드 외교장관 회의는 그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미국의 가장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은 물론, 최근 중국과 무력충돌까지 경험한 인도조차도 중국을 공개적으로 적대시하는 조직이나 문서에 서명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새로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은 무분별한 대중 적대 정책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적대관계가 아니라 전략적인 경쟁관계라고 재규정했다. 다만 중국에 대해 미국의 번영과 안보, 민주적 가치에 도전하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Most Serious Strategic Competitor)’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바이든의 전략가들은 트럼프 시기에 폭풍과 같이 중국을 거칠게 압박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좀 더 정교하게, 서서히, 전방위적으로, 장기적인 포석을 가지고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려 한다.

“中, 미국에 도전하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당면한 현실에 대한 자각과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 호주의 저명한 로위(Lowy)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아시아 파워인덱스’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미국과 중국의 역내 국력 격차는 매년 좁아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81.6대 76.1로 2018년의 85.0대 75.5에 비하면 그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 후엔 역내 국력지표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은 현재 탈냉전 시대와는 달리 중국을 압박하는 데 사용 가능한 경제·외교·군사 자원이 크게 제한받고 있거나 고갈되고 있다. 트럼프 시기에 너무 쉽사리 이 자원들을 남용하다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중국의 자신감만 키워주었다.

미국 국내 정치는 거의 내전 상황이라 할 정도로 분열상이 극심하다. 바이든은 당장 2년 후의 중간선거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바이든이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표방하는 이면에는 일단 국내 정치를 고려하면서 외교를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상주의와 경제 이익의 보호, 불필요한 국제적 개입 최소화, 효율적인 국제 리더십 회복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기조는 결국 동맹과 우호적인 국가들과 연대해 비용을 크게 분담시키면서 중국을 상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는 다자외교 활용이 중요하다. 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소프트 파워에서 호소력을 갖는 가치와 이념을 외교정책의 기준으로 전면 활용하려 하고 있다. 기후변화, 질병, 핵확산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당면한 위기에 대해서는 공공재 제공을 주도하는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바이든 시기 미국의 대외정책은 중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최대한 회피하면서도,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압박 기제를 구축하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美를 장기적 적수로 규정

중국은 일단 신중하게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대중 정책의 수준과 폭이 분명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정부는 이미 2019년 이 변화의 국면이 백 년 만에 한 번 올 정도의 대격변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서구·대서양 중심의 국제 질서는 크게 흔들리고 아시아·태평양 중심의 국제 질서가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혼란과 불안정성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요인을 크게 안고 있다. 다만 이는 단시일 내에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전쟁이라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중국은 미국을 장기적인 적수로 규정하고, 전술적인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심스레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바야흐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중 전략 경쟁은 마치 고수들의 화산논검(華山論劍·중국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용어로 천하제일의 고수를 결정하기 위한 무림대회)과 같이 변모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의 주춧돌(cornerstone)이고, 한국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lynchpin)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동북아 전략의 주춧돌이자 방파제이고, 한국은 반드시 견인해야 할 핵심축인 셈이다.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에서 당분간 중국이 생존하고 현상을 타개하는 데 가장 필요한 반도체를 제공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 국면에서 미국이 현재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거꾸로 그만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 더 강한 선택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의 선수(先手)와 중국의 다음 수를 모두 숨죽이면서 지켜보고 있다. 일본이 그렇고, 동남아 국가들도 그렇고, 서유럽 국가들도 그러하다. 유럽과 중동에서는 파열음과 진동을 크게 내면서 전통적인 대지정학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글의 국제정치 상황에서 각자도생과 헤징(위험분산) 전략은 필수적이다. 중국 역시 칼날을 가다듬으면서 자신의 역량을 점검하고 미국의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이미 이 판을 읽고, 전략 경쟁 과정에 함부로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을 압도할 군사 역량을 우선 확보하고, 미국의 선수에 따라 대처하면서, 냉전적 구도에서 생존을 모색할지 아니면 미·중 전략 경쟁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지를 판단하려 하고 있다. 김정은은 한반도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조건은 이미 갖췄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중이 화산논검에서 일합을 교환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의 두 가지 전제도 흔들릴 수 있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이 당연히 장기전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다음은 미·중 경쟁에서 미국 우위의 필연성 가정, 공고한 한·미 동맹은 상수로 가져가야 한다는 신념이다. 실제 중국의 지역패권 확립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한국의 호불호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모두가 변수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면서 한국의 대응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이 부상할 때마다 한국은 막대한 고통을 겪어왔다. 위정자들과 주축세력들은 기존 강대국과의 관계에 자신의 이해를 동일시하면서 국제정치를 정치화하고 관념화했다. 그 결과 객관성은 상실하고 경로의존성만 강화하면서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 한국의 이해를 놓고 볼 때, 중국에의 편승은 고려하기 가장 어려운 마지막 선택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만을 고집스럽게 외치는 것도 궁극적인 답은 아닌 상황이 됐다. 고수들이 즐비한 강대국들의 화산논검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와 선택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당장은 ‘결미연중(結美聯中·한·미 동맹을 더욱 다지고 중국과 연합하는 외교정책) 플러스’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미화중(聯美和中·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친화하는 외교정책) 전략, 더 강화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중점을 두는 외교정책)을 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급하겠지만 이럴수록 신중해야 하는 시점이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