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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21.08.19] [세계와우리] 대선 후보군에게 고함

  • 김흥규
  • 2021-10-02
  • 240

美 중심 국제질서 급격히 무너져
향후 5년간 ‘격변과 도전’ 직면
대선 주자들 외교·안보정책 중요
균형감 가지고 큰 그림 제시해야

망국은 한 가지 요인보다는 여러 요인이 축적된 결과이다. 집권 엘리트들의 도덕적 해이와 가치관 혼돈, 거듭되는 정치적 실정, 내부의 극심한 분열, 외부 정세 변화에 대한 몰이해, 외적 충격에 대한 대비 부족이 겹치고, 결국 자신의 나라를 지킬 의지를 잃고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나라의 중추이고 최고 엘리트였던 인물들이 망국의 길에 오히려 앞장선다. 19세기 말의 데자뷔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 나라의 향후 5년은 과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의 모습일까.

21세기 들어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나름의 노력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미국은 이제 이를 유지할 의지와 능력조차 부재해 보인다.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표방한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동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수사를 넘어 실제적인 대중 전략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정치, 코로나 방역, 경제문제에 골몰하느라 대외정책은 여력이 없다. 현재 전망으로서는 내년 중간선거는 물론이고, 2024년 대선도 공화당으로 넘어갈 판이다.

 

우리의 기대 혹은 예상보다 빨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중대한 변곡점에 이를 수 있다. 일본 역시 오는 10월 중의원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지겠지만 경제, 코로나 방역, 미래 비전 등 총체적 난국이다. 국민의 불신으로 내년에 재차 선거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상황에서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이 유연해질 개연성은 거의 없다.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그만한 정치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2년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겠지만, 그 핵심으로 시진핑이 재임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은 보다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기존의 공세적이고 야심찬 대외정책을 더욱 밀어붙일 것이다. 북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10년을 넘어서 정권 안정기에 들어섰고, 핵미사일로 확고히 무장한 채 군사강국, 경제자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에 엄청난 부담과 위험 요인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년에 선출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전적으로 직면할 도전이다.

현재 대선에 나선 정치지도자 후보군 중에 과연 누가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해법을 낼 수 있을까. 북한문제 해법에만 집중했던 문재인표 외교·안보정책은 이미 파탄이 난 정책이다. 전환이 필요할 때, 전환하지 못하고 집착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여권의 모든 주자가 하나같이 문재인정부의 유산을 물려받고 경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문재인표 외교·안보정책을 넘어서서 창의적인 대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국내정치로 발목이 잡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대안이 나올 공간은 야권이 훨씬 넓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해법을 찾기 어렵다. 야권의 해법은 한미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전략 가입, 비핵화 이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최상의 압박을 가한다는 원칙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어느 유력 대선후보의 발언에서도 엿보이듯이, 중국에 대해서는 거의 적대적 태도를 품고 있다. 중국의 입장을 여과없이 수용하는 태도도 문제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중국관이 여과 없이 우리의 대중국관이 되는 현실도 큰 문제이다.

 

향후 5년 동안 직면할 세계는 우리의 일반 현실인식보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격변과 도전이 내재돼 있다. 과거 미소 냉전이 깊어가던 시절,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보다 균형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2중 전략이 절박하게 떠오른다. 그는 양 진영 간 어느 일방의 우위를 주장하기보다는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균형을 통한 억제, 긴장 완화와 군축을 모두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했다. 각 대권주자들은 이제 북한과 그 외의 이슈, 외교와 안보, 안보와 경제, 미국과 중국, 전통과 비전통 안보, 구안보와 신안보, 군비경쟁과 군비축소를 다 포용할 균형감을 가진 대한민국 외교·안보·대북 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