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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3.01.05] 尹의 ‘압도적 전쟁’은 문 정권의 ‘무기력 안보’ 폐기하는 전략적 전환

  • 김흥규
  •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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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규의 Deep Read - 윤 대통령 “북도발 단호한 응징”


민주당 정권, 낭만적 남북관계에 집착해 안보 구멍…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의지하는 것도 위험
윤의 “단호한 응징”, 실행력 담보 안되면 신뢰성 상실… 한국형 ‘솔라리움 프로젝트’채택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드론 도발에 ‘압도적 전쟁’ 준비와 단호한 응징을 안보팀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4일 “북한이 영토를 재침범하면 9·19 군사합의 파기를 검토하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압도적 전쟁’은 북한의 핵 도발과 핵 능력 고도화에 시종 무기력하게 대응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정권의 수세적 안보관을 폐기하고 공세적 대응체제를 갖추겠다는 ‘전략적 전환’을 꾀하는 메시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메시지를 넘어 전략과 실행력을 담보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압도적 전쟁’론이 실행력을 가지려면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가진 핵·미사일 상쇄전략이 마련돼야 한다.

◇무기력 안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술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공개한 것은 한국 전역이 핵·미사일의 사정권 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은 이미 핵 고도화 시대에 돌입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역대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에도 북핵·미사일 역량이 거의 방어 불능의 단계에 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는 논의가 있긴 했다. 핵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핵을 가진 상대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당시 ‘국방개혁 2.0’의 핵심 주제였다.

그러나 3축 체계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대량응징보복 체계의 핵심 내용, 즉 ‘미사일 전력의 압도적 증강, 전략사령부 창설, 율곡 이이 10만 양병설에 상응하는 즉응전력의 구비’ 등 담대한 제안들이 끝내 무시됐다. 문 정부가 낭만적 남북관계와 평화 무드에 집착한 결과였다. 민주당 정권은 자신들의 주요 약점으로 언급되는 안보 분야에서 역량을 증명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문 정부는 이미 실패가 명백해진 남북관계 개선에 집착하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역량을 과시하고 핵 교리를 천명한 후에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북한 핵·미사일 역량에 무기력한 상황은 보수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보수 진영은 북한의 군사적 공격이나 핵·미사일 위협을 정치적으로 활용만 했지 실제 이에 대응할 전략과 교리의 발전·준비 등은 소홀했다. 북한의 도발 때마다 입으로는 쉽게 강경 대응을 천명했지만, 미군의 전략자산을 동원한 대북 압박과 최신 무기 구매만 되풀이했다. 스스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자강의 고뇌와 대응책은 부재했다.

 

◇尹의 ‘전략적 전환’

윤석열 정부 출범 전후 국정과제에 드러난 국방정책 역시 안이하긴 마찬가지였다.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한국형 3축 체계의 능력 확보, 한미동맹에 의한 억제 강화만 되뇌었다. 윤 정부가 추구하는 ‘국방 혁신 4.0’이 북핵·미사일 고도화·대량 확보 시대를 대비하는 대응책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지금은 한미동맹 메시지와 확장억제 확언만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신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유사시 미국에 대한 핵 투발이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생존을 위해 북한과의 핵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믿음은 허물어지고 있다. 정글 같은 국제정치 체계에서 그 같은 믿음은 환상이다.

윤 대통령이 밝힌 압도적 전쟁 준비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기력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정권의 대북 수세적 대응체제에서 공세적 대응체제로 전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윤 정부는 문 정부 초기 안보 라인 일각에서 제안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던 전략사령부 창설이나 공세적 대북 정책을 추진할 물리적 조건들을 갖춰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실행은 간단하지 않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배운 게 있다. 즉, 핵을 가진 나라(러시아)는 재래식 전쟁에서 불리해졌을 때 전술핵 사용 위협으로 위기를 고조시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대(우크라이나)가 스스로 위기 수준을 낮추게 하는 ‘비대칭 위기 격상’ 전략이다. 러시아는 북한, 우크라이나는 한국으로 대체될 수 있다.

북한은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어도 최소한 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핵을 가진, 즉 ‘비대칭 위기 격상’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쪽의 자신감이다. 이런 자신감이 미국 레이건 항모가 동해에 진입해도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게 하거나 중국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논리를 관철할 수 있는 행태의 동력이 된다.

◇전략과 실행

북한은 자신이 한반도에서 어떠한 도발을 감행해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새로운 제재를 지지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이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북은 이를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배웠다. 북은 언제든 군사적 모험주의를 시도할 자신감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전쟁을 치른다면 ‘지지 않는 전쟁’을 해야 한다. 실제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압도적 전쟁 준비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북핵·미사일에 대한 억제의 신뢰성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전략적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를 점검하고 착실히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뢰는 언어적 유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량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이 직면한 안보 위기 상황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인 1953년 미·소 대결 국면에서 마주했던 불확실성에 비견된다. 아이젠하워는 국론이 크게 분열됐을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NSC 162/2라는 국가 전략서를 만들었고, 이는 냉전 기간 미국 전략의 근간이 됐다. 이른바 ‘솔라리움 프로젝트’다. 윤 정부는 ‘압도적 전쟁 준비’를 위해 측근 정치의 한계를 넘어, 한국형 ‘솔라리움 프로젝트’를 채택해 만인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진보주의자였지만 소련의 SS20 동유럽 배치 사태를 맞아 그 수량과 기간에 비례해 미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서독에 배치하는 것을 지지하는 ‘이중 결정’을 내린다. 이는 결국 소련의 중거리탄도미사일 철수와 미·소 중거리탄도미사일 철폐 협정의 길을 열었다.

◇나라를 살리는 길

지금은 파당을 넘고 중의를 모아 상상력과 실효성을 겸비한 지속 가능한 북핵·미사일 상쇄전략을 재구성해야 할 때다. 이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말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단호한 응징을 할 수 있는 윤석열 정부가 돼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나라도 살 수 있다.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 전 NSC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