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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2.07.28] 칩4 동맹, ‘가치 외교 + 실용 외교’ 균형점 찾아 국익 극대화해야

  • 김흥규
  •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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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규의 Deep Read - 칩4 동맹과 대외 전략

여권 내 ‘자유민주주의 가치연대’와‘실용주의적 신중론’두 흐름…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지가 판단 기준
섣부른 결정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제약… 반도체 최대시장 中 배제보다‘규범의 세계’로 이끌어내야


최근 한국의 ‘Fab4(칩4) 동맹’ 가입 이슈가 윤석열 정부 대외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운을 좌지우지할 중대 이슈로 부각 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그니처 정책으로 상징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섣부른 결정은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제약할 수도 있다. 대외전략의 기준은 철저히 국익 극대화여야 한다. 윤 정부는 복잡한 흐름을 타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예측·분석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와 ‘실용주의적 신중론’의 균형점을 찾아 칩4를 추진해야 한다.

◇가치 연대론

중국은 이미 윤 정부의 언술, 외교·안보 라인의 인적 구성, 주중 대사의 선정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중 관계가 거의 보텀 라인(bottom line)에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다가올 중국 공산당 20차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가 중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설정하면, 이는 사드 사태의 경우처럼 일선에서 쉽사리 수정할 수 없는 사안이 된다. 칩4 동맹이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면 적극 추진하는 것이 맞지만, 복합적이고 미묘한 주변 정세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집권세력 내 칩4와 관련해 두 가지 흐름이 주목된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론’이다. 대통령실 안보 라인이나 여권 일각에서는 21세기가 민주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가 대결하는 ‘가치의 시대’가 되고 있고, 한국 외교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연대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다 선명하게 미국을 지원하고, 가장 신뢰할 만한 미국의 동맹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을 윤석열 정부 시대 한국 외교의 목표라 여긴다.

여기에는 미국이 세계 경영을 위한 강력한 국력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지속할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돼 있다. 게다가 과학기술, 선진 장비 등에서 우위에 있는 미국과의 동맹 체제에 들어가야 통상국인 한국의 이익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스며 있다. 이런 인식이 윤 정부 들어 사드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에 단호히 맞서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PEF)에 참여하고, 칩4 가입을 적극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청와대 보고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 전개’를 외교 방향으로 밝혔다.

◇실용주의적 신중론

또 다른 흐름은 ‘실용주의적 신중론’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비록 이분법적이고 제로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는 것이다. 섣불리 추상적인 가치와 믿음에 입각한 외교·안보 정책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 기반해 보다 신중하고 실용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견해다.

실용주의적 신중론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정세가 단순한 직행을 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인 와류를 타고 있다는 판단 속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의 향배가 불투명하다. 코로나19 위기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을 더욱 깊게 했다. 미국은 현재 국내 정치로 혼란에 빠져 있고, 다가올 중간선거와 대선에서 그 분열상은 더 극대화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최근 사우디 방문에서도 엿보이듯 미국이 앞으로 일관성 있고 정합적인 대외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할 것을 기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 최근 미국이 추진해온 Blue Dot,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 인도·태평양 관련 정책들은 여전히 담론 수준이고, ‘쿼드’도 온전하게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IPEF 역시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특히 대중 정책과 관련,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 일정 정도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간선거와 대선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현재의 열세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대중 경제·공급망의 안정성 확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도 극심한 유동성을 타는 중이다. 최근 나토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체제적 도전자’로 선언했더라도 겨울이 다가오면 에너지난과 고(高)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될 서방은 분열될 개연성마저 있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할 계획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판단 기준은 국익

미국과의 협력 강화는 국익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통상국가인 한국은 기술 우위의 유지, 자원의 확보, 공급망의 안정성과 다변화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세계적인 차원의 미·중 탈동조화 추진은 가능한가.’ 테슬라나 애플 등 미국의 대표 기업들이 중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더 많은 부가가치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는 이미 한·미 간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결국 관건은 이익의 창출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익 극대화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외교부 업무보고 때 칩4 참여와 관련, “중국과의 관계도 잘 고려하면서 중국의 오해가 없도록 설득하고, 국익의 잣대로 판단하라”며 균형된 감각을 보여 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칩4 동맹이란 개념은 미국에서 나온 게 아니다. 미국 조야에서는 칩4 동맹이란 말 자체를 쓰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순히 ‘반도체 관련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 사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칩4 동맹은 대한민국 내 지식사회의 통용 개념이다. 이는 동맹을 소홀히 했던 문재인 정부 대외전략에 대한 안티테제로 형성된 개념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복잡미묘한 국제정세를 놓고 볼 때 칩4 동맹을 ‘가치 외교’의 입장으로만 보려는 것은 대외전략의 하수에 속한다.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를 토대로 하되 ‘실용주의적 신중론’으로 보완해야 한다. 즉 ‘가치’를 넘어 보다 냉정하게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보다 유연하면서도 보다 정교한 대외정책을 수립·결정·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 시장 중국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최대 시장이고 향후도 그럴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잃는 순간 국익도 잃게 된다. 탈러시아의 공백을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것처럼 탈중국의 공백은 자칫하면 대만과 일본 기업들이 메울 가능성이 크다.

윤 정부 체제의 대한민국은 글로벌 선도국가로 가기 위한 중대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각계 여론을 충분히 들으면서 신중히 이 문제를 검토해 칩4 동맹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 배제’보다 더 국익에 도움되는 건 ‘중국을 규범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