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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조선일보 2010.05.14] 중국을 '통일한국' 찬성으로 돌릴 수 있다

  • 김흥규
  • 2015-08-25
  • 704

중국이 통일 한국 수용할 조건

은 위기 조성해 생존할 수밖에 없어

결국 중국에 계속 악역 강요하게 될 것

북이 중국에 자산 아닌 부담이 되는 날 온다

중국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든 전략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든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현상유지, 즉 분단을 선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합의를 중시하는 중국의 정책결정과정 및 테크노크라트인 중국 지도부의 보수성, 여전히 실재(實在)하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중국을 한반도 분단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외교의 전략적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중국의 공식 입장은 남·북한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추구하는 대() 대만 통일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양안(兩岸) 간 통일을 지향하는 중국으로서는 논리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적대적인 세력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 중국은 현실적으로 한국이 한반도 통일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통일한국은 중국의 전략적 이해(利害)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주도한 통일된 한반도에서 중국에 비()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 정권이 미국을 도와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개연성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특히 대만과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반도가 중국 통일에 장애가 될 군사기지가 될 수 있다고 염려한다.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우려를 잘 인식하면서 생존 전략의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고자 한다면, ·중이 다 같이 동의할 수 있는 통일비전과 구체적 조건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이미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이해상관자(Stakeholder)로 부상하였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의지도 분명하다. ·중 간 전략적 이해에 반하는 한반도 통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우선 한·중 관계는 이제 더 이상 한국 외교에 있어서 변수(變數)가 아니며, ·미 관계와 더불어 항상 고려해야 할 상수(常數)라는 사실이다. 또 한반도의 통일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반드시 불리하지 않다는 인식을 중국과 공유해야 한다. '이리 해야 하는것 아니냐'는 당위적 차원의 설득이 아니라 실제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이해에 부합되게 한··중 간 전략적 이해의 공통부분을 확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중이 합의할 수 있는 한반도 통일방안은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비핵화의 길을 걸으며, 한국과 평화적인 방식으로 통일에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보유를 고집하는 한, 구조적으로 동북아 안보 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을 이용해 생존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할 것이다. 이는 중국이 경제발전과 국가 안정에 필수 조건이라 생각하는 한반도 안정을 위협한다. 북한은 결과적으로 중국에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과 갈등을 빚게 하는 악역(惡役)마저 강요할 것이다. 북한은 점점 더 중국에 전략적 가치가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 북·중 간 관계를 정상 국가 간의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나, 후진타오 주석이 내정·외교문제에 대해서 중·북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자고 제의한 데엔 이러한 북한의 행태를 견제하고자 하는 중국의 실제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북핵 위기가 깊어 갈수록 중국의 고민도 깊어갈 것이며,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사고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중 양국은 지정(地政)학에 기초한 20세기적인 안보관을 극복하고, 지경(地經)학을 포함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지()전략적 사고의 정립이 필요하다. 안정되고 통일된 한반도, 비핵화되고 평화지향적인 정부, 광대한 경제활동 및 교류의 공간 확보가 한·중 양국 모두에게 보다 많은 번영의 기회를 제공할 것은 틀림없다. 이를 위하여 한·중은 이제 미래를 지향하고(面向未來), 새로운 협력의 영역을 개척하며(創新合作), 상호 존중하고(互相尊重), 공동으로 번영(共同繁榮)하자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