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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포럼 2011.08.10] 한·중 국방장관 회의와 한중관계

  • 김흥규
  • 2015-08-25
  • 807

지난 715일 북경에서 한·중 국방장관회의가 2년 만에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동북아 국제정세가 신냉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조되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큰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중관계의 최대성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것이다. 이는 중국 외교가 양자관계에서 체결하는 가장 고도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중관계가 실제로 최고도의 긴밀한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한중관계가 도달하기를 희망하는 수준에 상호 합의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당할 것이다. 경제 분야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한중관계는 현재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중심의 일변도 외교로 인식되었던 이명박 정부의 전반기 외교, 한국 측의 중국에 대한 이해 및 배려 부족, 중국의 북한편향 외교, 대북 정책에 대한 한중간 견해 차 등이 그 주요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천안함 및 연평도 사태로 인하여 한반도는 전쟁 가능성까지 논의될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었다. ·중간에도 대북정책을 놓고 갈등이 크게 고조되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년간 3차례나 중국을 방문하여, ·중혈맹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도 일반적으로 제기되었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대응하여 한··일은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고, 특히 한·일간에는 2011년 상호군수지원과 정보보호에 관한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협정체결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냉전시대 사회주의 연대인 북··소 북방 삼각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연대인 한··일 남방 삼각동맹의 대립구도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중 국방장관 회의는 이러한 냉전구도로의 회귀가 양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공동의 인식을 잘 확인해주었다. ·중은 국방전략대화를 신설하고, 상호 단기 군사교육과정을 개방하며, 한반도의 안정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에도 반대하며, 비전통 안보분야에서 상호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은 한국국방장관의 면전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외교적 결례를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 개방하지 않던 J-10 공군기지와 주변 대테러관련 군 기지의 방문을 허용하여 한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특별한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러한 중국의 모순적인 행태는 한·중관계를 여전히 미·중관계의 종속변수나 하위개념으로 보는 중국의 시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국과 관계안정화와 안보협력이 긴요하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방장관회의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양측이 반대한다는 것을 문서로 명시했다는 점이다. ·미 군사협력에 제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현재와 추후 한반도 불안정의 주변수가 북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국 군부가 공히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합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추후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대해 한국 군부가 중국 군부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 주요 근거가 된다.

두 번째로 국방전략대화의 신설이다. 그간 ·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차원에서 가장 소원하였던 분야가 안보분야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중 국방장관 회의의 후속조치로서, 727일 한국에서 차관급 제1차 한·중 국방전략대화가 개최되었다. 이로써 한·중은 외교와 안보분야에서 다 같이 차관급의 고위 전략대화 기제를 마련하게 되었다. 안보분야에서 전략대화의 개최는 추후 상상이상으로 중요한 의의를 발할 수도 있는 분야에 합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의 개념으로 전략이란 형용사는 양자 간의 사안을 넘어, 중장기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한·중 양자관계에서도 북한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된다. 이제 중국내 가장 친북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중국 군부와 북한문제에 대해 전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세 번째로 한·중 군부는 현재 한·중간의 신뢰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북한문제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진 상황에서도 미래지향적으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양국이 비전통 안보분야에서부터 협력의 점과 선을 확대하면서 협력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여 보다 구체적인 협력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 “국방 교류협력 스터디 그룹형성을 적극 추진하고, 국방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중 군사부문의 미래지도자들인 영관급 장교들간 상호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전략성 대화를 정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긴요해 보이다.

·중 국방장관 회담 과정에서 발생한 외교적 결례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중 국방장관회담이 지니는 제도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중 국방장관 회의에서 중국 군부는 북·중혈맹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 복합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해서도 한국 군부와 가장 소통을 하고 싶은 집단은 중국 군부일 것이다.

 

21세기 변화하는 미·중관계와 국제정치 현실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한국은 일변도 외교로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문제 및 통일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 역시 한국과의 협력 없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번 한·중 국방장관회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개념에서 잘 묘사하듯이, 한반도의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에게 한국과의 관계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술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중은 이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발전을 위해 냉전적이고 지정학적인 사고를 넘어 협력해야 할 단계에 도달해 있다. 경제적 공간을 포함하는 지경학적인 사고, 인식의 보편적 공간을 고려하는 지인식론적인 사고를 포함하는 지전략적 사고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에 기초하여 상호 안보적 우려와 불신의 제약을 넘어 북핵문제는 물론이고 북한문제 역시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