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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포럼 2011.07.10] 중국내 전략사고의 변화와 한반도

  • 김흥규
  • 2015-08-25
  • 838

중국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은 투입과정이 제약되어 있으면서 최고지도자의 결정을 상명하달식으로 집행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책결정에 있어서 점차 복잡해지고 전문화된 지식을 요구하는 사안들이 많아지고 전문가들의 조언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단일모델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하고 있는 중국내 다양한 대외전략사고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내에는 개방과 국력 증대에 따라 변화한 자국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대외전략사고들이 존재한다. 이들 전략사고들은 정책적 영향력의 확대를 위하여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깊은 함의를 지닌다. 중국의 대외전략 사고는 대략 전통적 지정학론, 발전도상국 외교론, 신흥강대국 외교론 등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지정학파는 과거 강한 중국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공유하고 있으며, 이의 부활을 희망한다. 미국과 협력이나 조화보다는 구조적 경쟁관계에 더 주목하면서,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세력권과 완충지대의 확보를 중시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북한은 중국의 전통적인 세력권이면서 미국을 견제할 완충지대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띈다. 북한에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적극 개입하여 북한을 보호하고 영향력을 유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 지정학파의 핵심개념과 언어는 비록 현재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수사에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노년 세대, 군부, 네티즌 및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 들이 그 주요 담지세력이다. 이들의 주장은 최근까지 우리가 중국의 한반도관에 대해 지녔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하지만 중국 외교의 주류는 아니다.

발전도상국 외교론은 후진타오 지도부를 포함한 중국 외교전략 사고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중국을 강대국이 아니라 발전도상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에 합당한 대외전략과 대외정책을 구사할 것을 중시한다. 능력을 기르면서 때를 준비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론은 이러한 전략적 사고를 잘 설명한다. 이 전략사고는 중국이 적어도 2020년 중등 생활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북한은 동북아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고, 미국과는 물론이고 한국과도 갈등과 마찰을 불러일으킬 문제아적인 성격이 강하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미국과 갈등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는 입장이다. 대한반도 정책은 중국에 불리할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의 증가를 방지하기 위하여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한다.

발전도상국론은 문화대혁명의 폐해를 가장 잘 경험하고, 혼란의 두려움을 강하게 안고 있는 중국의 현 주요정치지도자들을 지식인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2010년 중국의 공세적인 외교로 인해 세계적으로 새로운 중국 위협론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012월 중국 외교의 수장인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향후 5년간 중국 외교의 방향을 제시한 평화적 발전의 길이란 장문의 글은 이러한 시각을 잘 담고 있다.

신흥 강대국 외교론은 최근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발전과 국력의 신장, 이에 따른 자신감의 증대를 반영하면서 중국 일반인과 엘리트 사이에서 지지층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이제 성장하고 있는 신흥 강대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국의 이해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외교가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소작위(有所作爲)적인 특성을 더 강조하는 사고이다. 17차 당 대회 보고는 이러한 사고를 반영하는 수사들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일부도 기존의 발전도상국론적 사고를 넘어 이러한 사고로 전환했다는 전언도 존재한다. 이는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관련 정책결정의 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주요요인중 하나이다.

이러한 전략적 사유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피하면서도 다자주의나 국제기구들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의 국익을 개진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슈에 따라서 필요할 경우 미국과 일정한 정도의 마찰도 감수할 것을 주장한다. 2010중국의 핵심이익개념을 대외관계에 적용시키면서 미국과 알력을 빚은 것도 이러한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며, 천안함 사태를 통해 한반도 서해지역이 중국의 핵심이익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저지하기도 하였다.

이들에게 북한은 발전도상국 외교론과 마찬가지로 문제아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발전도상국론과의 차이점은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필요하다면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의지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역으로 더 강력한 제재나 기존 대북전략의 변화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기회의 창이 열리면,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증진시킬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까지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수사는 발전도상국 외교론의 입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점차 신흥대국 외교론적 입장과 절충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현상유지를 지키는 것이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된다고 믿으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유지하길 원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하여 부심하고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담은 전통적 지정학파의 주장이나 신흥 강대국론자들이 과도하게 중국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중국이 보다 공세적이고 대립적인 외교정책을 채택하는 상황일 것이다. 중국의 민주화 과정은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보다 민족주의적이고 공세적인 외교를 채택할 정치적 토양을 제공할 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 급변사태를 포함하여 한반도의 장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으나, 한중간의 불신은 여전하고,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 비젼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향후, 중국의 민주화과정, 중미관계, 한국의 대중 및 대북정책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공간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주변 주요국과 공감대를 확산하면서 우리의 주도권과 국가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