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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3.04.08] [차이나 워치] 시진핑 외교, DNA가 바뀐다

  • 김흥규
  • 2015-08-25
  • 681

시진핑 집권기 들어 중국 외교의 DNA가 변하고 있다. 중국은 발전도상국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이 부상하는 강대국'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외부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태세다.

 

시진핑 외교의 핵심 키워드는 '신흥 대국 관계''균형'이다. '신흥 대국 관계'란 미·중 관계를 지칭한다. 그 내용은 우선,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체제에 도전하지 않고 그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호 핵심적 이익은 존중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상호 평등과 호혜 원칙에 입각해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균형'은 미국의 '전략적 재균형' 정책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 대책으로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과 관계를 강화하여 미국의 압박을 우회하여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첫 방문지로 러시아와 아프리카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마도 다음 방문지는 유럽이 될 것이다.

중국 정체성의 변화 및 이에 따른 세계 전략의 변화가 아직 한반도 전략에 구체화되지는 않고 있다. 중국 외교가 신흥 강대국 외교로 전환한다는 것이 한국에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북한에는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중국 외교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대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당의 고위직 인사가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기존 대북 정책의 적실성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근본적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전언이다.

실제 중국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언론과 여론의 대북 비판에도 관용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태도를 담은 내부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전통적 접근을 하던 기존 한반도 전문가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대북 전략이 일순간에 변할 것이라고 낙관해서도 안 된다. 중국은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아 그 전환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유지하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 ·중 간 전략적 경쟁은 지속되고 있고, ·중 간 정치적 신뢰는 약하고, ·미 동맹 문제가 남아 있고, 양안 통일 문제가 존재하는 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북한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전쟁 방지, 혼란 방지, 북한 정권 붕괴 방지, 비핵화라는 '3() 1()'의 대한반도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하기 시작한 중국 외교의 DNA는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개연성이 크다. 한반도 문제는 이미 미·중 간 세력 전이(轉移)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당분간은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세력 전이의 판세를 읽는 지축(pivot)이 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을 중국 측으로 돌려세울 수만 있다면, 동아시아의 전략 균형이 확연히 자기네한테 유리하게 기운다고 판단할 것이다.

일견 어려움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중견국인 한국에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 기회에 북한 문제에서 미·중을 견인하여야 한다. 공통 이익의 영역을 넓히고 차이는 줄여가는 선제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외교·안보 라인이 과연 이 기회의 시기를 활용할 전략과 기획 능력을 갖고서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