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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조선일보 2012.08.15] [글로벌포커스] '民意' 무시할 수 없게 된 중국

  • 김흥규
  • 2015-08-25
  • 617

아직 민주주의 체제 아니지만 최근 급속히 '人民 목소리' 커져

권력남용 시위에 당국 굴복주민들 요구로 오염시설 폐쇄도

대외정책에도 영향 줄 가능성, 민족주의 감성 분출 주의해야

 

최근 중국의 발전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국가도 경험하지 못한 변화의 속도와 폭을 보여준다. 외양적인 면에서 중국의 변화는 이미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정도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중심가는 뉴욕의 중심가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고층건물들이 즐비하다. 인터넷 인구는 5억 명을 넘어섰고, SNS 사용 인구는 350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 30년 넘게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결과이다. 그 속도와 폭에 따라 우리의 대()중국 인식도 변화해가지 않는다면 그 실체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 속에서 중국은 여전히 전체주의가 연상되고, 정책 결정은 최고지도자가 임의로 강제하는 상명하달(上命下達)식이라고 믿는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아직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견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중국의 최고 정책 결정 과정은 상명하달식이라기보다는 합의를 중시하고, 여느 민주주의 국가 못지않은 다양한 투입 과정이 존재한다. 특히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서 법치주의를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원자바오 총리는 보다 민주적인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 중국 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외양적인 중국의 변화 못지않게 내부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우선 시위의 수와 규모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시위 발생 빈도는 200912만 건, 201018만 건을 넘어섰으며, 지난해에는 20만 건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인민들이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부정부패, 빈부격차, 관리들의 권력남용, 환경오염 등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고, 중국 공산당 정부 역시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이나 SNS의 급속한 확대는 중국 당국의 언론 검열도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 광둥성의 우칸촌 사태는 지방 관리의 초법적인 권력남용으로 농민들의 봉기가 촉발되어 4개월에 이르는 시위와 대치 후 결국 당국의 굴복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지난달 쓰촨성의 스팡시와 장쑤성의 치둥시에서는 주민들의 시위로 주변 오염시설이 폐쇄되었다. 이러한 예는 이제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시진핑 시대가 다가오면서 중국이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현 체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인식과 변화의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중국이라는 독특한 조건은 그간 중국식의 발전방식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이를 보편화한 중국적인 모델이 수립되기보다는 오히려 중국 역시 시차를 두고 보편적인 정치발전 모델에 접근해가는 듯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변화는 대외정책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명()과 암()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다. 중국 지도부는 대외정책 결정에서도 민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현재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 지도부와 북한의 행태에 비판적인 민의 사이에서 괴리가 점차 확대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한국과의 경제협력 강화에 따른 이해관계 확대도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 되고 있다.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중국 당국과 민의 사이의 괴리는 더 확대될 것이고, 이는 결국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영토 및 주권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중국 지도자들의 정책적 유연성은 더욱 제약받게 될 것이다. 2010년 이래 강화되고 있는 주변국과의 영토·영해와 관련된 마찰에서 중국 외교가 보여주는 공세성은 이러한 변화를 일정 정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각 부문은 강화된 민의의 영향력과 민족주의 감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조직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만큼 영토·영해·주권과 관련된 사안은 양보와 타협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의 대외정책도 이제는 점차 국내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는 최근 중국 내 '핵심이익'의 정의와 관련한 논쟁에서 한반도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우리가 민감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중국 관계 역시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과거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정책결정 환경에 노출된 중국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중국의 자유화 및 민주화 과정에서 민의와 민족주의 감성이 묶인 족쇄를 풀고 억제하기 어려운 괴물이 되기 전에 한중 양국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족주의 감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은 가능한 한 조용하면서도 조속히 타결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한 공공외교 역시 강화해야 한다. 한중은 앞으로 그간 추구해온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책에서 차이를 과감히 줄여나가는 '구동축이(求同縮異)'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