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기고문

[세계일보 2012.07.31] [시론] 김영환씨 사건 韓·中외교 시험대

  • 김흥규
  • 2015-08-25
  • 640

인권 국한시켜 압박하는 건 무리

국제지지 업고 지도부 움직여야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고문 논란으로 한·중 외교가 모두 시험대에 섰다. 조야는 한목소리로 한국 외교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타하고 강경책을 주문하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까지 나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확약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 사안을 재외국민보호과에서 담당하게 해 대중 외교를 넘어선 국민 보호 및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안전부가 담당하면서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의 MB정부가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전제를 가지고 대북 정책을 펴왔으며 김영환 사태도 연장선상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사태와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할 나름의 물증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 사안 이면에는 MB의 대북 정책 및 한·중 양국 간의 불신이 가로놓여 있다. 양국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어 파열음이 불가피하다.

 

김영환 사태의 긍정적인 측면은 중국 당국에 한국인의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 점이다. 그러나 김영환 사태를 오직 인권 문제에 국한시켜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일 것이다. 이 문제는 보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대외정책 방향, 남북관계, 보편적 인권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의지 문제가 다 연관돼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 의지대로 관철하는 어려운 형국으로 보이며 한·중간 골은 더 깊어갈 것이다. 정공법에 중국이 인정하거나 굴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국가 가치로서 과연 인권 문제를 얼마나 중시하고 지켜왔으며 인권 원칙을 관철할 의지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두 번째는 우선 답답하더라도 사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중국은 정황 증거는 충분하나 고문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확인 작업을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고려할 것은 중국 외교부의 국내 정치적 위상은 이 문제를 담당할 국가안전부나 공안부문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다. 정법부문의 실무사령탑인 멍젠주는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 될 가능성이 크고, 외교부문의 다이빙궈는 은퇴할 전망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중국 외교부가 주도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높은 차원의 지도자를 움직이지 않고는 자신들의 조직 이익과 논리를 지키고자 하는 정법부문이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 사안의 해결책은 한국의 보편적인 규범과 원칙에 대한 자기 확신과 의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지지 획득을 통해 중국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자아의 혼돈상태에 있다. 발전도상국으로서의 위상과 신흥강대국으로서의 이중적 위상 속에서 혼돈을 겪고 내부의 규범, 인식, 조직 간 국제화의 수준, 국가이익에 대한 정의 역시 혼란스럽다. 다만, 중국이 지향하는 것은 세계 강대국으로의 위상이며 이에 합당한 원칙과 규범의 해석, 국제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이익의 재해석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환 사태는 중국의 강대국화 노력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자국이나 조직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성을 넘어 상대방도 인정할 수 있는 합당성을 추구할 역량을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사안을 계기로 우리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재인식하고, 북한 주민의 실제적인 인권 개선을 위한 방책에 대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보자. 우리의 대외 및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유사시 국제사회의 공조를 위해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 네트워킹의 강화 노력도 배가돼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2의 김영환 사태는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