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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2.02.20] [시론] '상호 공존' 이미지 부각한 시진핑 訪美

  • 김흥규
  • 2015-08-25
  • 631

중국의 국가부주석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시진핑(習近平)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아직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거나 실권(實權)을 장악하지 못했음에도 시진핑의 방미(訪美)는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 이유는 첫째, 그가 올가을 당대회에서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 차기 지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방문이 최근 미·중 간 불신과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져 더 의미가 컸다. 셋째,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향후 미·중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할 단초를 그를 통해 발견하려 한 것이다.

 

세간의 예상대로 이번 방미는 시진핑의 세계 외교 무대 데뷔에 방점이 찍혔다. 시진핑이 미·중 간 정책 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나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큰 방향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시진핑의 방미 이후에도 미·중 관계는 갈등과 협력의 흐름이 혼재(混在)한 상태로 뒤엉켜나가는 혼란기가 지속될 전망이다. 시진핑은 대신, ·중이 상호 화합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상호 공존을 추구하는 대상이란 것을 각인하고자 하였다. 시진핑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최초 방미 때보다 유연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미국을 대했다. 아이오와 농촌을 방문하고,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NBA 농구를 관람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동시에 티베트·대만 문제, 미국의 동맹 강화 정책 같은 중국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중국의 이해를 설파하였다. 이란이나 북한 핵 문제 등 세계의 주요 문제에 대해서는 미·중 간 조율 강화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중국의 달라진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은 대체로 위험 회피적이며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방미에서 시진핑의 태도로 보아 장차 그가 권력 기반을 강화하면 좀 더 유연한 대미 정책을 채택하거나 미·중 간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은 세계인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바탕으로 향후 중국의 대외 및 대미 관계에도 변화를 줄 개연성이 많다. ·중은 이미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상대의 이해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어려운 G2 시대에 진입해 있다. 시진핑이 제안한 북핵 문제와 같은 중대 사안에서 미·중 간 상호 조율과 협력은 향후 확대될 공산이 크다.

우리 외교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미·중의 극심한 갈등으로 미·중 간에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그 갈등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의 관계 개선 및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 강화가 우리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미·중이 한반도 현상 유지에 이해를 같이하면서 협력할 개연성이 크고, 통일이라는 현상 변경을 지향하는 한국의 입장과 배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방에 편중하는 약소국 외교로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지닐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연대하면서도 중국과 화합의 영역을 확대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 채택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여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중 사이의 가교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와 미·중을 넘어서는 외교 공간을 개척하여 성동격서(聲東擊西)하는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