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기고문

[서남포럼 2011.12.10] MB 외교와 강(强)중견국 외교의 이상(理想)

  • 김흥규
  • 2015-08-25
  • 975

MB정부시대 외교의 이상은 강()중견국 외교의 추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MB정부가 내건 성숙한 세계국가(Global Korea)"라는 기치는 그간 약소국 외교에 머물렀던 한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강()중견국 외교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의미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청와대에서 2009년 낸 MB정부 외교안보 비젼과 전략에 따르면 한반도의 범주에 국한된 소극적이고 축소지향적인 외교의 관성에서 벗어나---” 라고 언급하여 기존의 약소국 외교를 넘어 강()중견국 외교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한국 외교는 그간 냉전체제의 하부 단위로서의 역할, 북한의 위협, 주변 강대국들의 존재감, 1997년 외환위기 등으로 인하여 약소국 외교의 심리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이제 세계 15위권의 경제규모와 세계 10위내의 무역규모를 자랑할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국제정치에 공짜는 없다. 우리의 외교과제는 중견국으로 부상한 우리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그에 합당한 지혜로운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DJ정부시대, 한국외교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얻은 자심감과 DJ의 국제정치적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강()중견국 외교의 입지를 구축하려 시도한 바 있다. DJ 외교는 그간 동북아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약소국이라는 인식에 갇혀 있던 사고의 지평을 넘어 동남아 및 동북아를 지리적으로 통합하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외교를 제시하였다. 실천면에서도 동아시아 공동체 실천을 위한 동아시아 비젼그룹(EAVG)의 형성을 제시·지원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지평을 동북아를 넘어 가게 하였다. 그러나 DJ정부는 태생적인 소수정권의 한계로 대외관계 분야에 자원을 더 분배하거나 집중도면에서 크게 제약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시대에 균형자론은 같은 강대국 외교의 수사가 제시되었으나, 실제 우리 외교의 지평은 약소국 외교로 재축소되었다. “동북아 시대로라는 정권의 수사는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 보수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의 핵 위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전쟁방지에 관심을 집중하여야 했다. 노 정부는 적극적인 국면 타개전략으로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하였다. 이는 우리의 외교적 선택이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바꿀 수 있어야, 즉 우리가 강대국이어야 가능한 전략이다. “균형자론은 우리의 감성적 측면에는 부응하지만 국력의 한계라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전략으로서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보수적인 미국 부시정부와의 갈등은 고조되었고, 실제 노 정부의 대외정책은 생존과 전쟁방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약소국 외교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노정부 역시 DJ 정부와 마찬가지로 소수정권으로서 대외정책을 보다 능동적으로 추진할 여유를 가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MB정부는 그런 의미에서 다수정권으로서 국내정치적 Premium을 안고 출발하였으며, 대외정책에 더 큰 자산을 투여하고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현재까지 나타난 대외정책의 성과를 보면 2010G20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의 유치, 대러시아 외교의 강화, 한중일 협력사무소의 한국 유치 등 기억할 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외양적인 성과 못지않게 실질 내용에 있어 우려할 점도 상당부분 노정하였다. 그 부정적인 영향은 향후 한국 외교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다.

초기 이상과는 달리 MB 정부의 실제 외교행태는 약소국 외교의 전형으로 귀결되고 있다. MB 외교는 약자가 강자에 기대는 전형적인 편승전략을 채택하였다. 지나치게 미국 일변도 정책으로 일관한다는 인상을 국내외에 심어주었다.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적절히 다루지 못하였으며, 북한과 관계 악화 및 북한 핵개발 저지 실패, 외교적 신중함의 결여 및 전략 부재를 드러내었다. 살아 있는 생물과 같은 외교 현실에서 대안이 부재하였고 또한 대안을 가지기 어려운 외교정책결정의 문제점이 내내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 향후 한국 외교가 국제 사회에서 주변화되는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2012MB외교의 방향은 그간 전개한 외교를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중견국 외교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져야 한다. 새로운 정책이나 외교적 시도를 하기보다는 기존에 시행했던 외교의 의미를 정리하고, 강점은 최대화하면서 문제점은 최소화하는 관리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에 임박하면서 대중적 인기에 편승하는 정책을 채택보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정책을 고려하면서 잘 마무리하여야 한다. MB외교의 이상이었던 강()중견국 외교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당장의 성과를 추구하기 보다는 보다 중장기적인 비젼을 가지고 전략적 투자를 하는 외교를 지향하여야 한다.

중견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되찾는 외교를 하려면, 외양을 넘어 국제사회가 존경해줄 수 있는 외교의 깊이와 격을 확보하고 상상력의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은 우리 양자외교의 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도 화합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 정책의 채택은 불가피하다. 대중국 관계에서 신뢰복원을 위한 가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한중관계의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MB외교에서 손상된 한중관계는 향후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의 유대를 충분히 잘 보여주었으므로, 내년 중국 측과도 정상회담을 추진하여 중국과도 우호, 선린, 협력, 공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중 FTA도 긍정적으로 검토·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도 중요하고, 무역국가로서 FTA의 확대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꼼꼼히 이해득실을 살펴보고 국내적 합의를 모으는 한미 FTA 처리과정이 중요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13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차세대 무기도입 계약을 내년에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후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면 그 결정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대국으로 근접하면 할수록 정책결정은 더 신중하고 복합적이며 다원적이다. 우리는 중견국으로서 국가의 이익은 세심하게 지켜내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야 강대국으로부터도 더 존중받을 수 있다.

MB의 신아시아 외교가 제시된 지 3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평가할 때,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는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MB정부의 추가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MB 정부의 신아시아 외교가 일시적(ad hoc)이 아닌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와 비젼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증거는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서 대북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려다 실패한 사례는 우리에게 뼈아픈 경험이다. 전통적인 우호세력이었던 동남아 국가들은 차치하고, 다른 지역과 특별히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했다는 증좌를 찾기도 어렵다. 2012년 기후변화 총회 유치를 두고도 카타르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지지세력이었던 아세안으로부터 충분히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되거나 주변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도 우려스럽다. 신아세아 외교는 차치하고라도 대 동남아 외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동북아와 동남아를 하나의 전략적 공간으로 바라보고, 동남아와 눈높이를 같이하는 평시외교가 필요하다. 실용외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만을 즉자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성으로 다가가고, 신뢰를 나누는 중장기적인 안목과 전략, 노력이 필요하다.

비핵·개방·3천 대북정책은 기존 DJ 및 노무현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새로운 정부의 문제의식을 집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책의 강점은 북한 핵문제의 긴박성을 대내외에 강조하고, 북한에게도 한국의 민주정부가 동 사안에 대해 얼마나 오래 정책의 일관성을 가져갈 수 있는 지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정권의 생존을 걸고 핵무장을 추진하는 북한의 현실, 국제 안보환경의 안정을 요구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향후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으로부터도 더 유연한 대북정책을 요구받을 압력에 직면할 개연성이 크고, 중기적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이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차라리 3·개방·비핵 전략이 더 현실적이다.

 

한국은 주변 강대국이 모두 지지하는 현상유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통일을 지향하는 유일한 현상타파 세력이다. 그만큼 우리의 외교환경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변도 혹은 편승외교는 우리의 생존전략으로는 합당한 전략이나 현상타파, 즉 통일을 준비하는 전략으로는 시대에 역행하는 전형적인 약소국 전략이다. 강중견국 외교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는 외교이며, 우리의 번영을 촉진하는 외교를 지향한다.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미중 공동 제휴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불확실한 중국외교의 미래행태에 대비하면서도 중국과 화합하는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동북아 유일한 현상타개국가로서 한국은 그 역량을 착실히 구비하지 않으면서 그릇된 판단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입각한 외교를 전개한다면 향후 더욱 더 어려운 국제환경에 처할 수 있다.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외교공간으로서 역내 중견국가(Middle Power)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부정적이고 갈등하는 외교보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외교를 더욱 세심히 추진해야 한다. 일본과도 협력을 강화하고(協日), 러시아와도 소통 및 전략적 이해를 높이는 노력(交俄)을 배가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강()중견국 외교의 기초강화를 위해서는 MB외교가 남긴 부정적인 잔여물들을 극복하면서 보다 전략적인 사고를 가지고 우리의 시야를 넓히며 복합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간적으로는 북한 문제 및 한반도에 매몰되도록 처신했던 우리 외교 전략의 시야를 보다 넓은 높은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편향된 이론과 인식, 일변도 외교를 넘어 보다 유연하게 변화하는 국제관계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지를 모으고 항상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 외교정책결정과정이 중요하다.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가치는 우적을 가르는 수단으로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를 먼저 지켜내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존중받는 원칙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대북 정책과 통일은 즉자적인 목표추구보다 우회하는 전략이 아마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평화롭고 민족이 공영할 수 있는 통일이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다. 그 명운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