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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매일경제 2014.07.04] [테마진단] 배려 확인한 한·중관계, 이젠 실력이다

  • 김흥규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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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원려(遠慮)가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국부적인 측면에서는 양보하더라도 한국과 관계가 대단히 양호하다는 인상을 미일에 심어주려 하였다. 한국은 대중 외교가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실리를 챙기려 하였다. 양국은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면서 껄끄러운 사안들은 공동성명에서 배제하고 그 대신 미래 협력을 위한 기반을 닦으려 하였다. 갈등을 표면화하는 대신 협력 공간 확대를 선택한 이 회담은 외양상 양국 모두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미 국내외에서 주목을 크게 받았다. 시진핑의 외교는 올해 들어 전례 없을 정도로 새로운 구상들을 쏟아냈다. 시진핑은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새로운 아시아 안보구상을 제시하였고, 기존 미일 중심인 아시아개발은행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중국 중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 구상들의 특징은 유라시아에서 미국 영향력을 가급적 배제하고, 국제규범과 제도에 대한 미중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과 중국의 새로운 국가대전략 간 충돌이 가시화하는 순간이었다. 중 정상회담은 중국의 새로운 구상에 대한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았고, 한국은 미중 간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 측은 한국이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구상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하면서 압박하고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한국은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중국의 더 강력한 지지를 필요로 하였고, 중국은 지역 강대국 지위를 놓고 갈등하는 일본에 대한 추가적인 압박과 공조를 필요로 하였다. 동시에 중국의 핵심 이익을 위협하는 한국 내 미국 미사일 방어망 확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명기하는 것은 향후 미중 관계 불확실성 속에서 여전히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에 대한 공동전선 확대가 일본과 협력할 가능성은 물론 한미 동맹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사안이었다. 중 양국은 이처럼 외교안보 분야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고,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세계는 주목하였다. 그런데 그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하게 나왔다. 그것은 어느 것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 양국은 합의할 수 없는 분야를 뒤로 미루고 그 대신 한중 양국 관계에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양국 간 인문 교류 확대, 비전통 안보 부문 협력에도 집중했다. 또 한국은 주저하는 중국을 설득하여 한중 간에 추후 첨예하게 갈등할 수 있는 사안인 이어도를 포함한 남해 해상경계 획정 문제를 2015년부터 논의하기로 하였다.

 

정상회담의 합의는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한중 협력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추진할 우리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보다 공세적이고 치밀하게 세계 전략을 구상하면서 다가오는 중국에 대해 우리 생존공간과 이익을 유도해 낼 인프라스트럭처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중국과 함께`라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중국과 전략적 게임을 해 나갈 인력과 사고, 제도에 대한 제고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오늘 미뤄진 `원려`가 미래에 더욱 가중된 고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IT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중국을 상대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