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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세계일보 2014.03.18] ‘박근혜 통일 방안’에 대한 기대

  • 김흥규
  • 2015-08-25
  • 790

신뢰·협력 관행 쌓으며 진전시켜야

민주적 원칙 바탕 담론 형성 중요

 

2014년 동북아 안보환경은 퍼펙트 스톰’(거대한 폭풍)이 다가오는 형국에 비유될 정도다. 미국의 지역 안정자 역할은 약화되고 있고, 북한의 핵무장화는 공고화되고 있으며, 일본의 보통국가화 추진에 따른 역내 불안정성이 가속화되고,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안보재앙의 악몽이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안보재앙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평화통일의 축복일 것이다.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던졌고 2014년을 통일준비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화두를 내걸었다. 우리는 현재 이 두 극단적인 안보환경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를 마치고 25일 독일을 방문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헬무트 콜 총리가 독일 통일이라는 목표를 선포한 구 동독의 대표적인 경제중심 도시인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존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방안에 이어 보다 구체화된 박근혜식 통일방안의 발표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역대정권의 경험을 보자면, 통일을 강조한 정부일수록 오히려 통일에 역행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았다. 정세분석의 미숙과 통일철학의 일천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표는 이러한 우려를 넘어 실천적인 의미의 통일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낳게 한다. 그 단초는 박 대통령이 2002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밝힌 남북 경제공동체 통일방안에서 읽혀진다. 이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을 지속적인 과정의 산물로 인식하면서 기존의 통일조급증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기존의 민족공동체론이나 많은 통일 담론이 정치적 통일 위주였던 데 반해 경제공동체수준의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기초로 신뢰와 협력의 관행을 쌓고 더 고도의 단계로 진전시킬 것을 기대한다. 동시에 통일의 최종 단계(end-state)마저 배타성을 띠기보다는 유연하게 열어놓고 있어 남북한 간의 타협,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평화구축을 통일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로 두면서, 동시에 평화적 방식으로 한민족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설을 읽고 있자면, 현재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방안조차도 제대로 그 철학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독일 통일의 경험을 보자면, 통일을 위한 기회의 창은 갑작스레, 찰나간에 찾아왔다. 독일 통일은 필연이 아니었다. 통일은 준비된 정부와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서독은 안보를 확고히 하면서도, 일관된 정책을 지니고 꾸준히 동독과 교류를 추진하고 접촉의 면을 넓혀왔다. 주변의 주요 이해 강대국과의 외교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지역통합의 흐름을 잘 활용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와 소련의 용인을 동시에 얻어내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동독 주민의 마음이 서독과의 통합을 갈망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관건의 시기에 전략적인 비전과 담대함을 지닌 지도자의 결단력이 중요했다. 또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민주의 원칙을 충분히 활용해 통일담론을 형성하면서 통일을 위한 국내적 내구력을 육성해왔다는 점이다.

북한은 정권의 공고화 및 유지를 위해 우리의 정책방향 여부와는 관계없이 한국과 일정 정도의 긴장과 갈등을 필요로 한다. 향후에도 갈등과 협력이 복합적으로 공존할 것이다. 전근대국가체제와 근대국가체제 사이의 신뢰 형성은 지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을 견인해 통일의 길로 이끄는 역량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결국 안보재앙의 악몽과 평화통일의 축복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어떠한 길을 걸을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다. 독일 통일의 교훈과 12년 전 케임브리지대학의 연설에서 드러난 비전을 체화시킨 박 대통령의 통일 방안이 이번 드레스덴 선언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유연해 북한을 끌어안으면서도 전략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통일로 가는 길을 닦는 그런 비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