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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3.12.23] <포럼>중국군 유해 송환과 冷戰 유산 극복

  • 김흥규
  • 2015-08-25
  • 848

한국과 중국 양국은 지난 19일 경기 파주시 적군 묘지에 묻혀 있는 6·25 참전 중국군의 유해(遺骸)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때 전격적으로 제안한 내용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이는 중국이 19506·25 전쟁에 참전한 이래 한·중 양국 간에 유지돼온 잠정적인 전쟁 중단 상태가 종식돼 가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다. 동시에 최근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및 한국의 새로운 방공식별구역(KADIZ) 선포 과정에서 빚어진 한·중 간의 알력과 긴장 상태가 향후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다준다.

·중은 냉전(冷戰)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1992년 국교를 수립했고, 그 후 세계 양자 관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히 경제·인적·문화 교류를 확대해 왔다. 한국은 그동안 매년 평균 10% 정도로 확대되는 중국 경제 발전의 가장 큰 수혜국이 됐다. 중국의 부상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정치적 신뢰와 협력은 제한적이었다. 이는 6·25 전쟁으로 상징되는 양국 간의 불편한 역사적 경험이 여전히 생생하고, 상이한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상호 편견과 몰이해 정도도 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 동맹과 북·중 특수 관계가 상충되는 것으로 인식돼 양국 관계의 발전을 제약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배경이다.

중국은 시진핑 시기 들어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제시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동시에 새로운 주변국 외교방침을 천명하면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외교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미국과 상호 핵심·전략적 이익을 존중하면서, 직접 대립하기보다는 경쟁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주변국, 특히 동남아시아 및 한국과의 관계를 특별히 더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중 관계 역시 이제는 정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로 전환해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이러한 변화 추이에 대해 북한은 올 들어 북한 지역에 남아 있는 중국군의 묘역을 크고 성대하게 가꾸면서 냉전의 유산과 중국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에 비해 한·중 간 냉전의 유산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 외교의 DNA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한·중 간 유해 송환 합의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그 세()를 같이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흔히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 요약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대중(對中) 전략을 채택했다. 중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 방향은 박정부의 이러한 대중 정책에 호응하는 측면이 강하다. ·중은 냉전시대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단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일방적인 CADIZ 선포로 인해 빚어진 혼란과 일시적인 패닉 상황은 중국의 변화하는 외교 DNA와 전략적 구상을 잘 독해하지 못해 발생한 측면도 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당분간 중시할 것이다. 한국 역시 박근혜정부 들어 강()중견국 외교를 추구하면서 중국과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양국은 향후 상호 협력의 영역도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중 간에 상호 전략적 이익이 합치하는 이 시기는 양자 간에 존재하는 북한 문제와 이어도 문제 등 당면 현안에 대한 이견을 확연히 줄여 나갈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의 시점이기도 하다.

이번 중국군 유해 송환 합의는 한·중 양국이 실제적으로 냉전의 유산을 극복해내면서, 다른 변수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양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그 첫걸음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