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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5.07.07] 中의 ‘천하 兩分論’과 한국의 선택

  • 김흥규
  • 2015-08-25
  • 870

최근 들어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포함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을 다 포용할 만큼 넓다는 언급을 종종 한다. 이는 어찌 보면 패권 협력이라는 공존의 미학을 말하는 듯하지만, 달리 보면 미·중이 천하를 양분하자는 제안으로도 들린다. 태평양을 내해로 여기고 있는 미국에는 대단히 도전적인 언사로 들릴 만하다.

 

이러한 천하 양분론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것은 전국시대였다. 오로지 힘과 정략, 이해관계에 의존해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야 했던 시대다. 서부의 강자였던 진()나라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위협적인 대외정책을 구사하던 동녘의 강자 제()나라와의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천하 양분론을 제안한 바 있다. 드넓은 천하에서 동녘은 제나라, 서녘은 진나라가 분할, 통치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자신감에 넘쳐 있던 제나라는 이 천하 양분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나라는 전국 7웅 중 하나로 이미 송()나라를 멸망시켜 국력이 절정에 있었다. 제나라 민왕(湣王)은 자신의 강력한 권위와 권력에 도취해 서쪽으로는 한··조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공격했으며, 북쪽으로는 연나라를 위협했다. 마침내 민왕은 천자가 되려는 꿈까지 드러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백성을 우습게 알고, 신하들의 간언을 엄벌했으며,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데 급급해 결국 나라의 기강과 지도자의 권위는 무너지고 있었다. 민왕 당대에 각국의 연합 공격을 자초하면서 멸망 지경에 이르렀고, 민왕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중국의 역사평론서인 자치통감은 민왕이 조그만 성공에 자만하고 국제 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좁은 안목으로 그 지경에 이르렀다고 기술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천하 양분론을 제안하면서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을 위협하고, 그간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만에 빠져, 궁극적으로 미국과 군사적 대결을 통해 패권의 향배를 결정할지, 아니면 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근간으로 경제력·효율성·매력 등의 영역에서 경쟁해 주도국이 될지 아직 그 누구도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진핑 시기의 중국은 옛 제나라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시진핑은 민왕처럼 강력하지만, 전횡하거나 자만하진 않는다. 주변에는 좋은 책사들이 넘치고, 정책 결정은 독단적이기보다는 전문적이며, 국민은 시진핑을 불신하면서 무능하다거나 지엽적인 이익을 추구한다고 믿지 않는다.

 

중국이 상정하는 미국과의 관계는 영합적이고 즉각적인 대립보다는 협력과 대립을 동시에 수반하는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과정에서 인식하고 있다. 미국과 충돌보다는 미국이 닦아놓은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적극 활용해 중국의 국익을 증대하고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군사력 증진을 통해 미국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은 회피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중국은 강한 상대와 경쟁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강한 분야에서는 충돌을 피하고, 스스로 강점이 있는 경제, 문화적 유산, 인적 교류 등을 통해 미국과 경쟁하겠다는 방략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역으로 포위할 참이다.

 

중국은 경제 규모에 있어서 2020년쯤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2030년대까지 미국의 군사력 우위는 유지될 것이다. 이 기간 미·중 간에는 새로운 관계 설정과 제도 정립을 위한 경쟁이 혼란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중 양국은 중국의 주변국들에 대한 영향력 경쟁과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이 천하 양분의 시기에 우리 외교안보, 심지어 경제 영역에 도전의 파도가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기회도 동시에 수반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같은 세력 전이성의 시기에 단 한 번도 성공적으로 대응해 본 적이 없다. 천하 양분의 경쟁 속에서 패망한 송나라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도 아니고 돌고래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복어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요동치는 세계 정세의 교차점에서 우리 지도자와 외교안보 라인의 명민함 여부가 어느 때보다 우리 운명에 큰 획을 그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