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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5.04.27] 중국의 東管西進 전략과 한국의 선택

  • 김흥규
  • 2015-08-25
  • 865

최근 셰일가스 혁명을 계기로 미국의 역량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미국의 헤게모니(Pax-Americana) 3.0 시대에 진입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 중국 굴기 2.0의 시대도 동시에 시작되고 있다. ‘독수리이 함께 강한 기를 내뿜으면서 엉켜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이 시기는 우리에게 더욱 혼돈스럽고, 외교안보 분야에서 양자택일적인 선택을 더욱 빈번하게 강요받는 도전의 시기가 될 것 같다.

 

시진핑 시기 중국이 그리는 외교안보 전략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거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기존 발전도상국이란 자아 정체성을 넘어 강대국이란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지니고 그에 걸맞은 국가 대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제 더는 대륙에 한정하는 대륙국가가 아니라,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아우르는 대륙-해양국가라는 복합 정체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를 담으면서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부강하고 존중받는 중국의 꿈을 이루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중국은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상력과 행동 방식을 채택한다. 강한 미국에 대항 및 충돌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하고 있다. 동양식 바둑을 두겠다는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언명한 대로 그 중심에는 새로운 실크로드(一帶一路·일대일로) 구상이 있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발표한 구상을 독해해 보자면, 중국의 향후 전략은 동관(東管서진(西進남개(南開북화(北和)’로 요약할 수 있다. ·일 동맹이 강하게 압박해오는 동북아에서는 대항하지 않고 관리하면서, 서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남태평양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북쪽의 러시아와 몽골과는 이익의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 구상에는 러시아·중앙아·남아시아 3개 육상 통로, 인도양-유럽-아프리카, 남중국해와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2개의 해상 통로가 구상 중이지만, 동녘으로 향하는 실크로드는 아직 없다. 그 함의는 심각하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이후 한동안 동북아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투자우선 순위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의 동북아 정책은 최근 반둥에서 시진핑-아베 신조 회동에서 보듯이 일본과 충돌은 억제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 위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북아 거점 국가인 한국에 대해서는 기대치를 낮추고, 북한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개선해 보다 균형 잡힌 남북한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93일 베이징에서 개최할 70주년 전승기념일에 김정은 위원장 초청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지고, 외교적으로는 더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도 더 큰 도전의 상황을 맞고 있다. ‘돌고래로 자찬하고 있는 우리 외교가 이러한 변환을 읽어내고 합당한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중국을 잘 안다고 믿는 정책 결정자들의 그 믿음이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전략 구상에 독이 되진 않을까? 시름은 깊어만 간다. 외부 환경이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 전에, 우리 외교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아직 남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일본과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