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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문화일보 2015.12.24.] 2016년엔 和中 넘어 協中단계로 가야

  • 김흥규
  • 20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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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박근혜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유산이 무엇일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시기다. 2017년은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박 정부는 대체로 중견국 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딘 게 아닌가 하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는, 유산이라 할 만한 특정한 전략이나 정책은 부재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초기의 정책들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아니면 원칙에 치중해 결실도 없이 시간을 낭비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대중(對中) 정책은 아마 가장 성공한 대외정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박 정부 시기 한·중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국제 정세와 박 정부 이후의 한·중 관계를 고려한다면 상황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한·중 관계는 여전히 그 토대가 약하고, 엄준한 도전적 상황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 한·중 관계는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인 호감도와 우의에 기초한 측면이 강하다. 차기 한국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며, 지금 같은 양국 정상 간의 관계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한·중 협력과 호감도 증가의 구조적 기반이었던 동북아 경제 분업 구조가 붕괴되고, 한·중 경제는 점차 경쟁 관계로 바뀌고 있다. 셋째, 미·중 간에 국제 제도, 규범, 영향력 분야에서 경쟁의 시대가 본격 대두되고 있다. 차기 미 대선 결과에 관계 없이 한국은 향후 더 강하고 지속적인 미·중 간 선택의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넷째, 중국의 대북 정책은 올 들어 변화 중이고, 관계 개선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모란봉 악단 사태로 잠시 주춤거리겠지만 북·중 관계는 곧 회복될 개연성이 크다. 북한 문제를 놓고 한·중 간 이해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섯째, 북한은 수소탄 개발에 근접해 있다. 그러나 한·중은 여전히 북핵 문제 해결의 주체 및 방식 등에서 견해차가 크다.

이러한 도전 요인들을 인식할 때, 2016년은 한·중 관계의 미래 기반을 적극 구축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 북핵과 북한 문제에 얼마나 전략적인 협력이 가능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한·중이 동북아 경제 분업 구조의 약화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협력의 영역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 역시 중요하다.

다행히도 한·중은 상호 전략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는 양국 지도자 간에 특별한 신뢰가 형성돼 있다. 이 조건들을 한·중 관계 기반 구축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과 화중(和中) 단계를 넘어 협중(協中) 단계로 신속히 이행할 것을 제안한다. 화중 전략의 핵심은 한·중 상호 간의 차이점들을 과감히 축소(求同縮異)하는 것에 머물지만, 협중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형해화(形骸化)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중국 외사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간의 공식대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최고위층의 지원을 받는 1.5트랙 전략 대화 구축이 시급하다. 이에 기초해 북핵, 경제, 광범위한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상호 공동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 중국과 밀고 당기는 단계를 넘어 도모 단계로 진입할 것을 제안한다. 시진핑 시기 대북정책은 국가 이익에 기초한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어느 때보다 우리의 이해와 유사하다.

박근혜-시진핑 임기 내에 해양 경계 획정 문제를 타협적으로 타결하는 것도 긴요하다. 이 사안은 전략적 공간에 대한 이해관계가 핵심이다. 중국이 이 협상을 적극 수용한 것은 타결 의지를 보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현 정부 임기 내에 절충적으로 타결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적극 임해야 한다. 이 사안을 해결한다면 이는 한·중 우호관계 100년의 초석을 닦은 것이다. 박 정부 최대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안은 향후 한·중 관계에서 가장 폭발성이 강하고, 국제화하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을 개연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한·중 간 북한 핵 안전 문제에 대해 공조해야 한다. 북핵 안전 문제는 한·중이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위협이다. 이를 전제로 미국을 끌어들여 한·미·중 핵 안전 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방향만이 박 정부가 기존과는 차별적인 한·중 관계의 기반을 구축하고 중견국 외교의 전통을 차기 정부에 넘겨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