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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5.11.26.] 북·중 정상회담 개연성 커지고 있다

  • 김흥규
  • 2016-02-04
  • 872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브라질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 이론이다. 세상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안조차도 복합적인 연계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테러는 예상보다 빨리 북·중(北中) 관계가 개선되고 심지어 북·중 정상회담의 개연성을 크게 높이는 원인(遠因)이 될 것 같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측에 원하는 것은 아마 다음 5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核)을 인정해 달라는 것, 둘째는 국제무대에서 핵 국가로 대우해 달라는 것, 셋째는 중앙정부 차원의 대규모 경제 협력과 지원을 해달라는 것, 넷째는 북한군 현대화를 지원해 달라는 것, 다섯째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했던 예우를 해달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후진타오 시기였다면 두 번째와 네 번째를 제외한 다른 사안들은 충분히 가능했을지 모른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강대국이란 자아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대북 접근 방식도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 이익에 기초해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다루면서 중국의 이익을 손상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핵 보유와 핵실험에 대한 반대 입장도 강력해졌다. 북·중 관계 개선의 전제는 북한이 얼마나 비핵화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느냐가 됐다. 북·중 관계가 한없이 악화했음은 물론, 시진핑 주석은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최초의 중국 지도자가 됐다.

중국의 대북(對北) 정책은 2014년 10~11월쯤을 전후해 중대한 변화 조짐을 보였다. 내부의 격론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 위주의 압박 전략이 실제 효과가 작고 대북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더구나 추후 미·중 관계가 악화할 개연성이 크고, 한국 역시 새로운 정권에서 미국 편향의 정책을 채택할 개연성도 우려했다. 북한 카드의 유용성이 부상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2015년 압박 위주에서 압박과 회유를 병행하는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은 비핵화에 대한 요구 대신 북한이 도발적인 조치를 자제한다면 북·중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간 중국의 압박에 대응해 외교 다변화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일본, 미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적 지원은 물론, 외교적 고립을 타개해 나가려 했다. 그러나 다 여의치 않았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으로 북한 경제도 불안하고, 미국은 선거 국면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물샐틈없는 공조를 강조하는 한국 역시 대북 정책의 큰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핵·미사일 실험의 대가는 적어도 향후 2년간 북한을 더 깊은 고립에 직면케 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 역시 북한을 더 혹독하게 다룰 것이다.

결국, 북한은 중국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의 연기를 일단 교환했다. 북·중은 서로 관계 개선이 필요하면서도 이를 추진하기 위해 교환할 선물이 마땅찮은 상황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거래 대상으로 내놓기를 원치 않고, 중국 역시 미·중 관계 및 한·중 관계를 훼손하는 선물을 주면서까지 급격히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의 파리 테러와 IS의 미국에 대한 추가적인 테러 위협은 추후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던 미·중 간 갈등의 여지를 크게 제한할 것 같다.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당분간 테러와 중동 문제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기존보다 더 유연한 대북 정책을 취할 공간을 제공해 준다. 내년 제7차 당 대회를 준비하는 북한의 입장에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약속하는 대신, 적어도 위 셋째와 다섯째의 옵션을 받아내면서, 첫째 옵션을 현실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할 것이다. 중국은 대북 갈등보다는 유화책을 더 과감히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중 정상회담이 추진될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더욱 대담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평화 공세도 예상보다 더 길게 끌고 갈 것 같다.

이에 우리 외교안보 라인은 과연 어떤 패를 보일 것인가? 실제 상황이 발생한다면, 물샐틈없는 한·미 공조라는 상투어로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입장이 너무 옹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