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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5.10.29] 中의 ‘한반도 정책’ 新 5기류

  • 김흥규
  • 2015-10-30
  • 1108

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이 참석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북·중 관계가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거나 심지어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언급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북·중은 현재 향후 양자 관계의 수준과 방향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한반도 안정 유지와 북한의 도발 억제라는 한·미·중 모두의 이해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점차 악화하고 있는 미·중 관계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그렇다. 다만 주목할 것은, 시진핑(習近平) 외교는 북한이 원하는 것에 연루되기보다는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국가 이익을 관철하면서 북한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중국의 대(對)한반도 관련 정책 논의들을 살펴보면 적어도 다섯 가지 흐름을 식별할 수 있다. 이들은 상호 공존하면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째, ‘북한 안정론’이다. 시진핑 시기 전환기에 중국은 북한에 대한 외부 개입을 차단하고 새로운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켜 주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서구적인 교육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다 유연한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한반도를 안정시키고 북한의 경제 발전을 광범위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둘째, ‘한국 포섭론/한·중 동맹론’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중국의 기대는 2013년 3차 핵실험과 지중파(知中派)인 장성택의 처형으로 무너졌다. 시진핑은 당시 더욱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대북(對北) 분석, 국익에 기반을 둔 대한반도 정책을 내놓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점차 동북아시아 거점 국가로서 한국이 크게 주목을 받았고, 중국 조야(朝野)에서는 ‘한·중 선린 우호협력조약 체결론’, 심지어 ‘한·중동맹론’까지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셋째, ‘대북정책의 유연성 확보론’이다. 2014년 말 대다수의 한반도 전문가는 한반도 관련 내부 정책회의에서 단합된 목소리로 시진핑의 경직된 대북정책을 보다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의 논리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북핵(北核) 문제를 놓고 한국과 중국 간에 ‘죄수(罪囚)의 딜레마’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리는 ‘북·중 관계가 잘돼야 한·중 관계도 좋다’는 것이다. 이들의 단합된 주장에 따라 중국은 2015년 북한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더욱 유연한 정책으로 전환했다.

넷째, ‘한반도 최소 개입론’을 들 수 있다. 미국 및 미·일 동맹의 강화로 압박이 강한 동북아에서는 충돌을 피하고 관리 위주의 정책을 취하자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어렵고, 중국이 개입할수록 비난과 부담은 가중되고, 한국은 여전히 신뢰하기 어려우니 한반도에서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생각을 담고 있다. 국가발전계획위원회·외교부·상무부가 2015년 3월 공동으로 발표한 일대일로 전략의 내용은 이러한 전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북한 변혁 대비론’이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전략가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구상하고 그 대응책을 강구해 왔다. 중국의 군부 인사들과 강대국론자들은 북한에 대한 혐오와 불만을 노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지니는 불안정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대북정책은 이들 상호 간에 정책 접근성 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과 타협의 결과로 보인다.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의 북한 방문 역시 현재 중국이 취하고 있는 강한 당근과 채찍 병행 전략의 일환이다. 북·중 양국은 여전히 상호 조심스럽게 외교적 탐색을 진행 중이고, 중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도 강화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북·중 관계나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아직 규정돼 있는 게 아니라, 진화 중이란 것이다. 이러한 북·중 관계를 선험적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우리가 그 과정에 어떻게 우리의 이해를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