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기고문

[문화일보 2015.10.01] ‘한국 주도의 한반도’ 공감대 넓히자

  • 김흥규
  • 2015-10-30
  • 859

2015년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미국이 세계 경제 발전을 이끌어가던 시기는 이미 중국에 자리를 양보한 지 오래다. 2020년대 초가 되면 경제총량 규모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예측이 세계 유수 기관들의 평가다. 중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이 이렇게 성공적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시진핑(習近平) 시기 들어 중국은 미국에 대해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형성하자고 제안한 데 이어 2015년에는 개혁·개방 시기 최초로 국가 대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공식화했다. 이는 점증하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 정면 대항은 회피하면서 점진적인 방식으로 우위를 점하겠다는 장기적인 복안이다. 군사와 외교 면에서 우위인 미국과 직접 충돌하기보다는 경제와 인문적인 자신감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이 주도하는 게임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강대국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바탕으로 적어도 책임 있는 강대국의 위상과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생각도 담고 있다.

일본은 종전(終戰)체제의 특징인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면서 스스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국가임을 공식화했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 그 결말이 명확하진 않지만, 미·중 사이에 영향력 확보, 규범, 제도 부문에서의 경쟁이 일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제안한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수립하자는 내용 중 대항·충돌하지 말고 공영하자는 부분에는 공감하면서도 핵심 이익을 상호 존중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중국의 예상보다 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고, 사이버 안보 문제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아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미·중 정상회담이 될지 모르는 이번 오바마-시진핑 간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겠지만 쉽지 않다. 그나마 북핵(北核) 문제가 미·중 모두의 합의 사안이란 게 우리에게는 위안이다. 미·중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관계 없이 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해 향후 더 격렬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이 거대한 전환기 외교안보 게임 앞에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전략적 결단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느 강대국도 믿을 수 없게 된 고립무원의 북한으로서는 핵무장을 완성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굳힐지도 모른다. 이미 로켓 발사를 예고했고,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나 신흥 강대국으로 정체성을 전환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를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역시 현 국제질서의 주요 축인 핵비확산 체제마저 실제로 무력화하는 것을 더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

최근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간의 담론에서 1976년 화궈펑(華國鋒) 체제로의 전환을 마오쩌둥(毛澤東) 체제의 붕괴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아마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개념적 공간을 확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은 체제의 지속성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이 미국 전문가들보다 더 비관적이란 2014년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서베이 결과도 의미심장하다. 김 위원장의 그릇된 선택은 북한이 외교와 경제는 물론 국내 정치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이 어려운 형국으로 빠져들게 할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다만, 현 추세로 볼 때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한반도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가 과연 전략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욱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화자찬만 하다가 전략적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중과 더불어 ‘한국이 주도하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다. 북한에 대해서는 ‘흡수통일 불추구 선언’과 남북한 ‘평화공존 대장전’을 제안하자. 이 간단찮은 국제 정세에서 김 위원장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심지어 그와 더불어 안정·안전·평화·번영을 논할 수 있도록 하자. 더 혼돈스러운 세계는 남북 모두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준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외교와 새로운 한반도 비전의 전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