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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5.08.04] 시진핑의 戰勝式과 朴대통령의 선택

  • 김흥규
  • 2015-10-30
  • 840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미후중(先美後中) 발언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외교는 9월 3일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되는 제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문제를 놓고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전승 기념식에 참석하는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가 아직은 다수인 것 같다. 이를 따르자니 김 대표의 미국 발언을 확인해 주는 꼴이 되고 만다. 참석하자니, 한국 집권당 대표의 언명이 좀 무색해지고, 한국 외교의 가벼움이 더 부각된다. 중국과 심상치 않은 갈등 행보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시선도 더 따갑다. 지난 러시아 전승 기념일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큰 부담이다.

국제관계에 공짜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이 전승 기념일에 방중하는 것을 무조건 기피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엄중하고, 중국과 다뤄야 할 사안이 중요하다. 미국과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보이콧했던 러시아의 전승절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을 포함해, 미국 등 어느 국가도 이번 전승 기념일을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 행사 참석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뜸을 들이되 김 빼기를 할 개연성이 높고, 미국은 참여하되 비중을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관심도가 높아 보이지 않고, 북한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주 귀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 보면, 이번 행사에 중국 주변국 외교의 거점국인 한국의 박 대통령이 참석하도록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나누는 교감은 향후 우리 어느 지도자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를 외교적 자산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중국 편향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현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최대 업적은 전 정부의 선미후중(先美後中)과 같은 방식을 추종하지 않고,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 기조를 잘 유지한 것이다. 중국과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안정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 동북아의 국제관계 상황과 중국 외교는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처해 있다. 중국은 향후 동북아 변수를 줄이는 동관서진(東管西進) 전략을 택할지 아니면 지속적인 관여 전략을 택할지 기로에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일정 정도 희생해서라도 핵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지역의 복합적인 전략적 이해관계 역시 추후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 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교감은 선택이 아니라 상수가 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과 도발 가능성 증가로 중국도 고심하고 있다. 관건적인 시기이다. 한국은 북핵 및 북한 문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놓고 중국 측과 전략적 소통과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혹시 전개될 수도 있는 새로운 북·중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우리의 입장을 개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동북아 지역 내 우리의 역할은 자명하다. 갈등과 협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21세기 외교안보 환경에서 대립과 갈등을 양산하기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지역 중견국가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국제적인 전략공간인 제주도 남해수역 경계획정 문제도 가급적 빨리 타결 지어야 한다. 시 주석을 설득해 한·중·일 정상회담을 연내 개최하는 것에 합의하고, 그 성과를 가지고 방미(訪美)하여 역내 협력 촉진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갈등의 확대란 측면에서 거침없는 외교행보를 보이는 일본에 대해 일정한 수준의 압력 및 견제 작용도 될 수 있다.

중국이 중장기 국가 대전략으로 추진하는 새 실크로드 전략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필요하다. 중국 서진(西進) 전략의 한 축을 동북아로 확장시키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 직위 및 주요 연구기관을 한국에 유치할 수 있도록 시 주석을 설득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떠한 안보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고 시간을 다투는 문제이다. 전승식장에서 박 대통령이 미소 짓는 얼굴로 푸틴 대통령에게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 어떨까. “그때 미안했다. 우리는 여전히 러시아와 협력을 희망하고 있고, 같이 머리를 맞대 보자”고! 이런 것이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