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기고문

[서울경제 2016.11.06.] [백상논단] 참담하다

  • 김흥규
  • 2017-01-31
  • 871

참담하다. 이것이 현재 일반 상식을 지닌 대부분 한국인들의 사고가 아닐까 싶다. 현 대통령의 향배에 대해 탄핵, 하야, 거국내각 구성, 사과 후 직무수행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민주공화국에서 이 수준이면 대통령의 직무 수행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정당성, 권위, 직무수행 능력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대체적으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은 더 이상 내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당조차도 대통령은 외치와 국방 문제에만 전념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는 외교안보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의 현 인식수준을 말해준다.

현재 나타난 결과로만 본다면 대통령은 헌법적 가치를 심각히 위배하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데 실패했고, 국민이 납득할 최소한의 대국민 공감 능력마저도 미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정책결정의 판단능력·합리성과 합당성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국내 정치에서 권력행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과연 이런 대통령에게 외교와 국방을 전담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치 문제보다도 국가 명운에 더욱 심각한 폐해를 가져올 영역이 바로 외교안보 영역이다.

국내 정치는 정책 실수나 과도한 행태를 보이면 바로 인식이 가능하고 교정을 위한 반작용이 일어나 상대적으로 폐해가 적다. 그러나 대외정책이나 국방안보의 문제는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국가의 안전·이익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이를 가벼이 여기는 나라는 21세기 복합적으로 요동치는 국제정치 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외교안보 정책 판단의 실패나 부작용은 잘 드러나지도 않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교정하기도 어렵고, 그 비용은 일반 국민에게 전적으로 부과되고 나라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부작용은 전임 시절만으로도 이미 너무 차고 넘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외교 기조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초기의 연미·화중·견일·포북(聯美和中譴日包北) 전략 기조에서 2016년 들어 맹미·견중·협일·압북(盟美牽中協日壓北)의 전략으로 전환했다.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이 엄청난 변화를 그 어느 누구도 합리적 타당성이나 일관된 전략기조 속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중대사 결정에 공식 라인인 국가안보실 실장,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장관, 심지어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마저도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실제 정책 결정라인에서 배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만 결정된 사안을 집행하는 비서나 홍보·전령의 역할에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누가 국가 명운을 바꿀 이 엄청난 결정들을 내렸단 말인가. 대통령 자신? 최순실? 아니면 최순실이 운영했을 수도 있는 사설 외교안보 자문팀?

민주국가의 강점은 주요 정책 결정시 충분히 숙의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광범위한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면서, 강력히 정책을 추동할 수 있다. 이는 결코 효율적인 체계는 아니다. 대신 소수나 독재자가 저지를 수 있는 판단착오의 엄청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다양한 정책 대안들을 구비해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강점이 있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민주공화적인 정책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 외교안보 정책결정 과정은 길을 잃었다. 전문성·권위·신뢰성·안정성에 다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숙의의 정책결정 과정, 전문성, 책임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현 상황에서 이를 넘어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외교안보 정책은 추후 한국의 명운에 두고두고 뼈아픈 결과로 남을 개연성이 크다. 이를 무시한다면 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국가 중대 외교안보 사안들을 대통령에게 전담하게 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미성숙하거나 그릇된 정책보다는 정책결정을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지혜롭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