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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6.09.06.] [오피니언] 포럼 사드 넘어 韓中관계 재설정할 때다

  • 김흥규
  •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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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교수·중국정치학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중국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회의 때 시진핑 주석과 제8차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9월 2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정상회담을 개최한 지 거의 1년 만이다. 그간 한·중 관계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역대 최고와 최악이라는 관계를 두루 경험했다. 그 계기는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격렬한 반대에도 7월 8일, 사드 도입 결정을 공표했다.

현 한·중 간의 갈등은 그 심연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악화일로로 치달을 개연성을 안고 있다. 우리 경제계나 일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우려나 실제 여파는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한·중 정상이 사드 문제를 과연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사드 배치 문제는 이미 한·중 간 가장 격렬한 갈등 사안이 됐고, 향후 한·중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척도가 된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을 얼핏 보면, 양국은 상호 사드 관련 입장을 양보하지 않고 원론적인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조건부 배치론’을 언급했다. 중국 측에 이것은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표현과 다름없다. 이에 시 주석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배치 시 한·중 관계를 포함한 지역 안보 정세가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중은 상호 간에 상당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 주석은 공개회의 석상에서는 사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동시에 사드 문제의 원인은 한국보다는 미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전향적 인식을 제시했다. 사드 문제를 한·미·중이 공동으로 협의해 풀자는 제안이다. 사드 배치는 우리가 주권적이고 자주적인 견지에서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드 문제는 미·중 전략 경쟁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동시에 사드 문제를 한·중 간에 추후 계속 소통하고 논의할 문제로 남겨 놨다. 한·중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중 외교의 조용한 승리라 기록할 수 있다. 양국은 파국으로 치닫기보다는 소통과 타협의 여지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올해 박 정부의 외교가 그간 중견국가 정체성에 기반한 연미화중(聯美和中) 외교에서, 한미동맹에 편중된 맹미제중(盟美制中) 외교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단 잠재웠다. 이는 시 주석에게도 큰 선물이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시 주석은 내부 전통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대(對)한반도 외교정책의 전환과 친한(親韓) 외교를 추진한 바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은 그간 중국 외교가 추구해온 ‘신형 주변국 외교’의 한 축이 좌초하는 상황이며, 국내정치적으로 권력의 재편성 과정에서 취약해진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사안이 됐다.

이제부터 한·중 관계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중국의 등가 대응(Tit-for-Tat) 전략은 한국에 상응하는 수위로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정책이다. 동시에 한국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싶지 않으며 타협을 원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향후 한·중 관계는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중은 여기에 머물지 말고 미래 한·중 협력의 기반으로서 중국 일대일로의 동북아 확장, 동북 3성과 해상 협력, 북극해 개척, 한·중 해상경계 획정 문제 등의 영역에서 협력과 성공의 경험들을 쌓아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