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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국민일보 2016.06.05.] [한반도포커스-김흥규] ‘북핵공정’의 시작인가

  • 김흥규
  • 2016-07-13
  • 890

[한반도포커스-김흥규] ‘북핵공정’의 시작인가

中 대북관계 개선으로 美 중심구도 깨려해… 한국 외교에 큰 도전적 상황이 닥칠수도

[한반도포커스-김흥규] ‘북핵공정’의 시작인가 기사의 사진
북한 외교의 최고위 실무 책임자인 이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5월 31일부터 나흘간 중국을 전격 방문하였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적 대북제재 강화 속에서 이뤄진 방중이라 주목을 받았다. 공식 방문 이유로는 제7차 당 대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쑹타오와 회담은 물론이고 국가주석 시진핑과도 면담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중이 새로운 것을 제시한 것은 없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어떠한 양보안도 제시하지 않았고, 병진노선을 고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중국 역시 이 부위원장을 환대하기는 했지만, 기존 원칙 유지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번 북·중 접촉을 단지 일과성으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시 주석과의 면담 당일 북한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발사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무례를 범했음에도 시 주석은 활짝 웃는 낯으로 이 부위원장을 맞아주었다. 최룡해 면담 때와는 크게 다르다. 북한이 어떤 선물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추구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중국은 현재 미국 중심의 북핵 대응구도에서 중국 중심의 구도로 전환하고자 하는 승부수를 띄우는 것 같다. 

그간 미국은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책임론을 강조해 왔고, 중국은 미국 책임론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제4차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의 담론은 ‘미·중 공동 책임론’으로 전환됐다. 북핵 문제에 대해 이제는 소극적 중재자의 역할을 넘어서서 조정자와 관리자의 역할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다. 중국은 이 부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그 의지를 실행에 옮기려 하는 것 같다. 현 미국 중심의 구도는 북한이 핵 개발을 진전시키고 도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가능해진다. 한국은 미국 편향의 정책을 취하면서 결국 사드를 배치하게 하고, 한·중 관계는 악화된다. 한·미·일 안보협력, 역내 대중 미사일 방어체계, 핵확산 위험은 강화된다. 이는 중국의 안보 전략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중국 책임론만 부각되는 구도이다.  

시진핑은 대담한 국면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구도를 타파하는 묘안은 북·중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 개발 관련 양보를 받아내고, 현재의 제재와 대립 구도를 협상 국면으로 전환시키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재구축하고,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영향력도 유지하는 방안이다. 중국은 이 부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그를 통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과 회유를 결합한 카드, 이를 거부할 경우의 대가 등을 명백히 제시했을 것 같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고, 핵 개발을 동결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성하기 위한 협상의 장으로 나오라 했을 것이다. 중국은 그 대가로 북·중 정상회담 개최, 대규모 민생지원과 경제협력, 김정은 정권의 안전보장 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시 주석이 평양에 갈 수도 있다. 이제 공은 김 위원장에게 넘어갔다. 점차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직면할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당장 핵을 포기할 필요 없이 정권의 안전을 담보하고, 중국과의 협력 증진으로 장기적인 체제 경쟁이 가능해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는 중국 책임론을 비켜가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구도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런 가정들이 다 허황된 것일까. 만일 이러한 대담한 시도가 시작됐다면 현재 제재를 강화하여 북한의 굴복을 받아내려 하는 한국 외교 전략에는 커다란 도전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 수준의 한·중 관계, 사드 배치, 한·미동맹 강화로 이를 타개할 수 있을까.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 묻는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