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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국민일보 2016.05.08.] [한반도포커스-김흥규] 외교도 협치의 정신이 필요하다

  • 김흥규
  • 2016-06-27
  • 893

[한반도포커스-김흥규] 외교도 협치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념·정치충성도가 외교 좌우해서는 안돼… 집단지성으로 담론 활성화해 경쟁시켜야

[한반도포커스-김흥규] 외교도 협치의 정신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4·13 총선은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국민의 인식 수준과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독단적인 권력의 행사나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정치를 국민들이 단죄한 것이다. 무도하고 비상식적인 정치가들에 대한 국민의 놀라운 승리였다. 너무나 많은 내외적인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쇠퇴와 우리의 준비 부족, 노령화, 사회적 불평등 심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무책임과 몰상식한 행태들, 북핵 위기,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 등 지뢰밭이 도처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에 대한 답으로 현 정부에 대해 협치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의 독선적인 통치보다는 협력적으로 국가적 힘과 지혜를 모아 이 어려움에 대처해보라는 명령이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우리 정치와 외교는 이데올로그나 정치적 충성도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에 좌우되었다. 권력의 유지와 획득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였다. 권한을 위임받으면 자신들의 철학, 인식, 역량의 부족을 성찰하지 않고 무리지어 사리사욕을 탐하고 권력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자주 목도되었다.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책임은 질 줄 몰랐다.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도 말이다. 이들은 우리의 미래에 깊은 음영을 드리운다. 이제는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다른 부류들과도 협력해 두루두루 지혜를 모으라는 국민의 요구에 답할 차례다.  

국내 정치는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전히 회의적이다. 그나마 협치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외교가 아닌가 싶다. 그간 박근혜정부의 외교영역은 국내 정치와 흡사한 양태를 띠었다. 상명하달 위주로 일방적인 전달방식이 일상이 되었고, 전문가들과의 소통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열심히는 일하나 상상력이 부족하고, 피상적이고, 경직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과 위안부 문제 합의로나마 안위해야 하는 상황이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1세기 상황은 정말 복잡하다. 도전 요인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경제는 하강 국면이고, 한국 경제는 더 빨리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의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향후 미·중 간 전략 경쟁은 더욱 첨예화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도널드 트럼프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은 보통국가화하면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신하고 있다. 이러한 21세기의 혼돈 상황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배가하면서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을 안겨준다.  

어느 누구도 이 복잡다난한 변수와 파고로 얽힌 미래를 앞에 두고 자신 있게 우리의 앞길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집단이나 인물이 있다고 한다면 무책임의 소산이다. 지도자는 이제라도 말과 소신을 아끼고, 관계와 학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말을 두루 경청해야 한다. 담론의 장을 활성화하고 경쟁시키면서 담론의 경쟁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확신에 찬 이데올로그나 정치적 충성도로 간택된 유사 집단이 외교를 좌지우지하게 할 수는 없다. 그만큼 상황은 엄중하다.  

우리 같은 국가에 외교는 만사일 수 있다. 무역국가이자 중견 반도국가로서 한국의 운명과 번영은 외부 세계와 너무나 밀접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자 대외 정책결정의 최소공배수이다. 더 이상 하늘이 점지한 철인왕을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말자. 대신, 민주주의의 강점을 발휘하여 이 땅 개미들이 담론을 활성화하고, 집단 지성의 지혜를 모아 이 어둠의 세계를 타개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