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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국민일보 2016.04.02.] [한반도포커스-김흥규] 결미연중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

  • 김흥규
  • 2016-06-27
  • 870

[한반도포커스-김흥규] 결미연중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

중견국에 걸맞는 외교정책 펼치지 못해… 민족주의적·자기중심적 외교안보론 경계

[한반도포커스-김흥규] 결미연중 외교전략이 필요한 때 기사의 사진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전례 없이 혼돈스럽고 스산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외교안보 문제는 관심 밖이고, 어느 정치지도자의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탈냉전 구조로의 이행, 중국의 급속한 부상, 미·중 전략 경쟁의 본격화, 세계경제의 지속적 하강, 북한 핵무장, 그리고 한국의 대응역량에 대한 불신과 전략의 부재가 혼란스럽게 엉켜 있다.  
 
냉전시기 내내 한국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편승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탈냉전이라는 구조 및 새로운 변수의 등장은 우리의 자생 능력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구시대적 안보 틀과 사고로는 21세기적인 새로운 경제·안보·AI 복합 환경의 변화 추이를 이해하고 대응하기 어렵다. 대외적 생존의 문제다. 외교안보 영역에 무지하거나 이를 선거에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집권당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정체성 확인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무역규모,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춘 중견국가라 할 수 있다. 중견국가란 규모가 지니는 역량의 한계를 잘 인식하면서도, 자주적이고 주도적인 외교안보 정책의 추진 의지와 전략의 유무, 국제사회의 인정 등을 필요로 한다.  

그간 한국 외교는 미국이라는 동맹에 의존하여 종종 강대국과 같은 양 하지만 실제는 자신을 왜소화하기 십상이었다. 북한은 전형적인 약소국이면서도 핵무기로 강대국인 체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 뭔가 단단히 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견국가적 특성을 담은 외교안보정책의 태동은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이다. 노무현정부는 중견국가의 정체성을 표방했지만 그 대가로 미국 입장을 더 많이 들어줘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정부는 본격적으로 중견국가의 정체성을 지니고 외교를 시도한 최초의 정부라 할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조화를 추구했고, 대북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신뢰외교를 표방했으며,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및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추진, 중견국가들의 협력체인 MIKTA의 창설국이 됐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정부의 중견국 외교는 스스로 좌초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북핵 상황에 대한 다급함과 위기의식, 중국에 대한 이해 부족, 김정은정권의 취약성에 대한 기대감, 불안한 미국 변수, 그리고 추후 생존전략 구상 등이 결합해 연미화중(聯美和中)에 입각한 기존의 중견국 외교 기조를 방기한 듯하다. 사드 논쟁, 김정은정권 붕괴론 등 현 국면을 주도한 외교안보라인은 강한 민족주의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결과로 한국 외교가 의도와는 달리 전형적인 약소국 외교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주의적 외교안보론이 경계해야 할 사고는 자아도취, 자기중심적 해석, 상황에 대한 무책임한 낙관론이다. 현실은 더 복합적이고 적대적일 수 있다. 

이번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미·중 및 동북아 각국의 균열이 심상찮다. 4차 핵실험 이후 외교안보 정책의 혼돈스러움을 재점검해야 한다. 일각에서 추진하는 편승외교가 가져올 중장기적인 결과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중 관계의 복원이 시급하다. 결미연중(結美聯中) 정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북한을 억제하고, 안보의지와 역량을 구축하는 데 더 힘을 기울이자. 미래 과학기술 환경에서의 외교안보 복합변화 추이를 읽으면서 유연한 헤징, 강력한 헤징, 균형외교, 친선외교 등의 전략사고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자. 그렇지 않다면 추후 제갈공명이 와도 한국의 처지를 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김흥규(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