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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0.09.24]<김흥규의 Deep Read>美 대만 전략, 중국의 핵심이익 건드려 ‘對中관계 마지노선’ 허문 것

  • 김흥규
  • 2020-10-12
  • 267

<김흥규의 Deep Read>美 대만 전략, 중국의 핵심이익 건드려

                              ‘對中관계 마지노선’ 허문 것


■ ‘美·中 대결의 장’ 대만

美 고위직 대만 방문·무기 판매로 中 자극, 군사 충돌 가능성…억중-연중-견중 거쳐 ‘압중’의 시대로

트럼프, 기술패권 충돌과 ‘쿼드 플러스’ 동맹구상 이어 이념전쟁 수행…양국 대결, 다음엔 한반도 향할 것


미국 국무부의 키스 크라크 차관이 최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만을 방문해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는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만을 마치 하나의 ‘국가’인 것처럼 대하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허용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겨냥한 통상·경제 전쟁과 기술 패권 전쟁을 벌여온 데 이어, ‘쿼드 플러스’ 동맹 구상으로 강력한 압박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 국익 수호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대만이 미·중 군사적 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중 충돌 공간 된 대만

대만은 중국이 ‘전쟁을 수행하더라도 지켜야 할 핵심이익’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지역이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시도한다면 ‘비평화적’ 방식으로 대응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2005년 ‘반국가분열법’). 말하자면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는 지역이 바로 대만인 것이다. 미국도 오랫동안 대만 문제에서만큼은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이런 시기에 미 국무차관이 대만을 방문한 건 일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리덩후이는 대표적인 대만 독립론자였다. 그런 정치적 인물의 장례식에 1979년 미·중 수교 이래 최고위급 미 국무부 관리가 방문한 것이다. 크라크 차관은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의 입안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EPN 구상은 중국을 자유세계의 경제권으로부터 분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압박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을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지역에 파견한 것이다. 그가 머무는 동안 고위급 ‘경제·상업 대화’ 개최 방안 등 다양한 경제 협력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면의 변화’는 ‘국면의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가뜩이나 중국군은 최근 대만 영공과 영해를 넘어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미국은 이에 맞대응하고 있다. 두 나라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어 어느 쪽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이제 대만은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문제는 사소하고 우발적인 군사 충돌이 언제든 전쟁으로 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중 정책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중 정책은 억중(抑中)-연중(聯中)-견중(牽中)-압중(壓中)의 변화를 거쳐 왔다. 미·중·대만 간 3각관계의 변화는 그간 미·중 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세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

우선 1950∼1960년대 냉전 시기 미국은 대만을 도와 중국을 군사·외교적으로 억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게 ‘억중의 시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은 명분은 떨어지고 비용은 많이 드는 베트남전에서 철수하고 점차 공세적인 소련(현재의 러시아)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과 연대하기로 결심했다. ‘연중의 시기’에 미·중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만이었다. 미국은 대만을 대신해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2년 방중 당시 ‘ 상하이(上海) 코뮈니케 ’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이 중국의 한 부분임을 인정했다. 미·중 양국은 1979년 국교를 수립해 반소(反蘇) 연대를 공식화했다.

1990년대 이후 2010년대 초까지 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과의 갈등을 원치 않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인해 미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는 동안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대로 진출하도록 견인하는 ‘견중의 시기’를 이끌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년)을 도와 비약적 경제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줬고, 자본주의 세계시장 편입의 뒷배가 됐다.

 

◇트럼프와 壓中 정책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과 2016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는 반전됐다. 시진핑의 야심은 컸다.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역대 권력자들이 달성하지 못한 통일이라는 임무를 자신의 치하에서 달성하고자 한다. 일설에는 2035년까지 이를 이루려 한다. 방식은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되 중국을 통해 부를 이루게 해 자연스레 통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을 미국에 필적하는 국가로 성장시키는 ‘중국몽’을 꿈꾼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후 시진핑의 원대한 꿈은 심각한 난관에 직면하게 됐다. 경제 ‘탈동조화’가 일어나고, 통상 갈등이 첨예화하며, ‘화웨이·틱톡 제재’ 등을 둘러싼 기술 패권 전쟁이 치열해졌다. 이 와중에 올해 발생한 홍콩 사태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채택이 중국과 서방세계의 분리를 만들어냈다. 미국·일본·인도·호주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자유국가들이 참여해 중국을 포위하는 ‘ 쿼드 플러스’ 동맹 구상도 착착 진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관계를 그간 40년 이상 지속해 온 ‘전략적 협력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 관계’로 전환했다.

게다가 미국은 대만을 하나의 ‘국가’처럼 대하기 시작했고, 관료들의 대만 방문을 자유화했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연속적으로 허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양국 관계를 유지하는 마지노선이었던 대만 문제를 미·중 전략경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대중 압박 전략을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추진하는 ‘압중의 시기’가 온 것이다.

◇조종 울린 ‘불가피성의 시대’

마이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월 23일 닉슨 도서관에서 행한 연설 ‘공산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는 오랫동안 중국을 상대로 추진해온 포용정책에 대한 종언을 알리는 선언이자 일종의 대중국 선전포고였다. “우리가 자유를 구가하는 21세기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시진핑이 꿈꾸는 중국인들의 세기가 될 것인가의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맹목적인 관계 설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의 정책 수립자들은 시간이 흐르면 중국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우호적이며 덜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고 그건 불가피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불가피성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는 “자유세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중국이 확실하게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라고 선언했다.

미국이 단순한 중국 때리기를 넘어 근본적인 대중 전방위 압박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은 백악관이 앞서 5월 21일 의회에 제출했던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만 문제로 미·중 간 무력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가장 큰 희생자는 대만이 될 것이다. 약소국이 강대국들의 전략게임에 끼게 됐을 때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지를 대만 상황이 잘 말해준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미·중 경쟁의 다음 장은 한반도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대 정외과 교수, 미·중정책연구소장

■ 세줄 요약

미·중 충돌 공간 된 대만 : 대만은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지켜야 할 핵심이익으로 천명한 지역. 하지만 미국은 대만을 ‘국가’처럼 대우하면서 파격적으로 접근. 미·중 관계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면서 대만은 미·중 군사 충돌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

미국의 대중 정책 변화 : 미국은 과거 소련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 경제 성장을 돕고 세계무대로 견인. 트럼프 집권 후엔 시진핑의 ‘중국몽’에 통상 전쟁·기술패권 충돌·쿼드 구상으로 대응하며 대만 급속 접근 전략 구사. 억중-연중-견중 이어 ‘압중’의 시대로.

‘불가피성의 시대’ 종언 : 미국은 대중 포용정책을 중단하고 이념전쟁을 치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상태. 대만 문제로 미·중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가장 큰 희생자는 대만이 될 것. 이는 남의 일만은 아님. 미·중 충돌의 다음 장은 한반도로 향할 것이기 때문.

■ 용어 설명

‘상하이 코뮈니케’는 1972년 2월 27일 닉슨 미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서명한 외교문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며, 1979년 국교 수립의 이정표가 됨.

‘쿼드(Quad)’는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미국은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을 추가로 참여시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해 나토와 같은 안보 동맹으로 공식 기구화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