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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세계일보 2020.06.11] [세계와우리] 흔들리는 세계질서와 지도자의 자질

  • 김흥규
  • 2020-06-24
  • 319

美·中 전략경쟁으로 위기 도래 / 韓, G2이어 北문제도 시험대에

외교·안보 새 전략 필요성 대두 / 대선 도전 정치인 해법 고민을


천하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과 같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외향형의 국가는 항상 국제정세의 변화에 민감하고 취약하다. 위기가 상시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이번 미·중 ‘전략경쟁’으로 촉발된 위기는 보다 구조적이어서, 장기적이고 영향력의 규모도 남달라 국가의 존망을 흔들고 있다. 오판하거나 실수할 여력이 없다. 총선이 끝나고 대선이 앞으로 다가왔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분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엄중하게 다가오는 외교·안보적 폭풍을 예견하면서, 현 정부를 비롯한 정치도자들은 미·중 전략경쟁이 야기한 다음과 같은 도전에 대해 답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미·중 전략경쟁이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이에 대해 임시방편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을 넘어 우리의 원칙과 방향을 담은 대응 방안을 밝혀야 한다.이는 과거처럼 수동적이거나 단편일률적인 ‘동맹’의 강조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둘째, 미·중 전략경쟁 시기 북한은 그 대응 전략을 이미 설정한 것 같다. ‘생존’을 우선으로 하는 자력갱생이 위주다.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과 같은 무리한 변화 시도는 더 위험하다. 한국과 주한미군의 군사역량에 대한 주도권 확보, 핵무기 역량의 확고한 보유는 필수적이다. 기본적인 생존을 보증하고, 미국에 대응할 견제 수단으로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는 보완수단이다. 이러한 방향 설정은 우리의 기대와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셋째, 북한은 현재 ‘생존’에 급급하여 일단 대남 대결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기적으로 보면 북한은 더 이상 ‘생존’에 급급한, 과거 우리가 목도한 그런 북한이 아니다. 한반도 주도권과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강국’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제안을 흔쾌히 받는 것이다. 이 경우, 검증이 어려운 비핵화는 요원하고 남남갈등은 극화되면서, 한·미동맹과 유엔사의 약화는 불가피하고, 대북 국방역량은 미처 준비 안 된 상황에서 동결되는 것이다.

넷째, 북한의 최근 단거리미사일과 방사포 실험의 연이은 성공은 한국의 방어에 엄청난 도전을 야기했다. 한국은 물론 미군의 어떠한 전략자산을 가져다 놔도 방어불능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어떻게든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려 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한 미국의 협상 전략은 유효하다.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 요구는 덤이다. 이제 우리의 국방전략과 대북 인식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다섯째, 중국은 적어도 향후 20년 이상 총체적인 군사력에서 미국에 열세지만,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는 이미 미국의 항모를 요격할 DF-21, DF-26, DF-17 배치 등 ‘접근 거부(A2AD) 전략’의 성과로 인해 미국에 대한 군사적 억제가 가능해졌다. 미국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의 동아시아 지역 배치이다.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이 그 대상이고, 미·중 전략경쟁의 속도로 볼 때 차기 미 행정부에서 반드시 제기될 것이다. 이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와는 그 이유가 다르게 압박이 올 것이고 중국의 반응도 거의 전쟁 수준으로 격렬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걸고서라도 이를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은 진보 정부라도 군사역량의 취약성과 미국에 대한 의존성으로 인해 이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중국과의 관계는 파탄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오판할 경우 국가의 운명이 흔들릴 사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명-청의 교체기인 광해군-인조 시기 경험한 바 있다. 이러한 안보 위기는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모두 향후 5년 이내에 발생할 수 있다. 차기 정부의 대응 역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 정부 외교·안보 전략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다. 향후 정치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은 상기의 문제 제기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