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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0.03.17] ‘코로나 고립주의’로 자국중심 확산… ‘新 G-Zero’ 현실화

  • 김흥규
  • 2020-03-17
  • 415
■ 코로나로 틀 바뀌는 국제정치

中 초기방역 실패 집권기반 위협·美 트럼프 ‘재선 장애’… 韓 정무적 판단 앞세워 국민불신·日 아베도 입지 약화
사태해결 주도 강대국 사라지고 ‘美·中 탈동조화 체제’ 가속화… 팬데믹 극복, 고립 아닌 국제협력서 답 찾아야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국제정치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본격화한 세계화의 흐름이 미·중 전략경쟁으로 한차례 휘청이더니, 코로나19의 급속 확산으로 전 세계적인 국가 중심주의 회귀 경향이 뚜렷해졌다. 개별 국가는 마치 정글의 세계에서 생존을 추구하듯 각자도생을 바탕으로 국가 간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결국 ‘코로나 고립주의’가 어떤 강대국도 국제문제에 개입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신 G-제로(Zero)’ 시대를 부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리스크’를 재확인한 국제사회의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 · 탈동조화) 체제 편입도 빨라지는 형국이다.

◇코로나 고립주의의 조류

세계화에서 우등국 중 하나였던 한국도 이미 130여 개국으로부터 입국 제한을 당하고 있다. 20세기 국제정치에서 국가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 실험 중 하나였던 유럽의 ‘열린 국경’ 원칙 역시 중차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소수의 비회원국 26개국은 솅겐 조약에 따라 여행객이 여권 검사 없이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국경을 개방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주요 EU 회원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하나의 유럽 정신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발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처럼 전례 없는 국가 간 거리 두기와 폐쇄적 국가주의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이는 아이러니다.

‘코로나 고립주의’가 만연한 이유는 우선, 코로나19가 과거 유행병에 비해 치사율은 높지 않지만, 확산성이 전례 없이 높다는 점에 있다. 확산의 공포는 폐쇄주의를 정당화한다. 두 번째, 세계는 어느 국가도 국제사회에 책임을 지거나 그 부담을 기꺼이 수용하려 하지 않는 ‘신 G-제로(Zero)’ 시대에 처해 있다. 미국의 ‘America First’ 강조는 국가 간 협력을 이끌 국제적인 리더십의 공백 상황을 초래했다. 세계 각국은 국제사회보다는 자국의 역량에 의존해 ‘팬데믹’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세 번째,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중은 국제협력의 확대보다는 갈등의 수단으로 코로나19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권위주의 체제로 인해 감염병 초기 대응에 실패한 중국을 팬데믹 원인 제공국으로 비난하고 있다. 중국은 슬그머니 ‘미국 원인설’을 흘려 물타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양국 간 불신은 더욱 고조됐다. 국제사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제기구의 역량 역시 두 나라의 전략경쟁 속에서 현저히 약해졌다. 네 번째, 코로나19의 특성상 백신 개발이 쉽지 않고 정보 세계화의 영향으로 확산 내용이 신속히 공개됨으로써 공포의 확산도 그만큼 광범위하고 빠르다.

◇한·미·일·중 집권 기반 동요

코로나19 대유행은 전 세계인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칠 글로벌 경제 폭락 우려를 낳았다. 경제활동 자체가 크게 위축됐고 수요 감소, 교역 제한, 투자 위축, 금융 불안정과 국제경제 하강 현상이 뚜렷하다. 이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중국 등 한반도 주변 강국의 집권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감염병 발생지인 중국은 초기 방역과 확산 방지엔 실패했지만, 이후 이를 관리하는 데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특히 드론, 인공지능(AI) 기술, 로봇 등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를 가장 잘 활용한 나라가 중국이다. 그러나 공산당 1당 체제의 특성상 비판 여론 억압, 정보 왜곡 등의 통치 스타일이 감염병 초기에 사태를 악화시켰고, 엄청난 국민 희생을 불렀다. 이런 것들이 인권과 자유의 확대를 요구해온 교수·청년 지식인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잠재적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의 경우 초기 방역 실패로 감염병 대확산을 봉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자체 보건·의료 역량, 열린 정보, 성숙한 시민의식 덕택에 안정적 관리 모드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소비자신뢰지수의 낙폭이 가장 큰 국가로 평가된다. 사태 초기에 방역 당국의 과학적 판단이 아닌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앞서면서 초래된 방역 실패에 따른 코로나19 후유증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반은 물론 국내 정치의 지형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라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전까지만 해도 올 11월 재선 도전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오직 그 자신만이 변수였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코로나19는 일본 국내정치에도 변수가 되고 있다. 일본 내 코로나19의 확산은 그 정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東京)올림픽 개최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위해 초기 방역에 소홀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가운데 하계 올림픽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입지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코로나19가 한반도 주변 강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그 나라의 집권 기반을 크게 흔들 핵폭탄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미·중 디커플링 확산과 전망

코로나19로 인해 미·중 간 심리적 거리는 더욱 벌어졌다. 서로 비난전을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감염병 대유행으로 정치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뤄지게 됐다. 전 세계가 ‘중국 리스크’를 자연스럽게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가 미·중 디커플링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세계는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에 더욱 취약성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의 외교는 변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견국이면서도 그 비전과 역할을 보여주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줄 수도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Charm Offensive(매력 공세)’ 외교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도 한국을 그렇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비록 코로나19 초기 대응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놀라운 보건·의료 역량과 시민의식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소프트 파워를 잘 활용해 코로나19 이후에도 팬데믹 방지와 국제사회의 보건·의료 협력 방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G20 국가, 아태경제협력체(APEC), 혹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의 협력을 제안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세계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성도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의 극복은 국가 간 고립주의나 자국중심주의, 혹은 각자도생이 아닌 국제협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 고립주의’로 온 세계가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앞으론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는 방역 당국, 개인주의를 넘어 대구로 달려간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 어려움 가운데서도 질서와 안정을 지키며 인내하는 대구·경북 주민들의 모습 속에서 갈등을 극복하는 협력모델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대 정외과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 세줄 요약

‘코로나 고립주의’의 조류 : 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전 세계의 ‘국가 중심주의’ 회귀 경향 뚜렷. 유럽의 혁신 실험이었던 ‘열린 국경’ 원칙을 담은 솅겐 조약도 시험대에 올라. 미·중은 코로나19를 갈등의 수단으로 활용 중. 이른바 ‘신 G-Zero’ 시대가 도래함.

한·미·일·중 집권 기반 동요 : 코로나19 확산은 각국 집권 기반을 뒤흔들 핵폭탄으로 변모. 한국과 중국은 초기 방역 실패에 따른 대확산이 집권 기반의 위협 요인이 됨. 트럼프는 재선 가도에 장애를 만났고, 아베 총리도 올림픽 개최 불투명으로 입지 약화.

미·중 디커플링 확산과 전망 : 코로나19로 미·중 간 심리적 거리는 더욱 벌어져. ‘중국 리스크’를 재확인한 국제사회는 미·중 디커플링 체제로 급속 전환 중. 팬데믹 극복은 국가 간 고립주의나 각자도생이 아닌 국제 협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어.

■ 용어 설명

‘미·중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이 국제 질서와 경기 등에서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탈동조화하는 현상. 탈동조화는 미국 주도로 출발했지만, 중국 역시 국제 패권구도의 역학 관계 속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음.

‘신 G-제로’란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주도하는 강대국의 부재를 함축함. 앞서 2011년 다보스포럼은 세계를 이끌던 특정국의 영향력이 약해져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는 상태를 ‘G-제로’라 불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