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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세계일보 2020.02.27] [세계와우리] 외교안보 역량 재편할 기회다

  • 김흥규
  • 2020-03-05
  • 363

코로나 대응책 놓고 정쟁 계속 / 정부·정당 신뢰 수준 추락 현상

안보현안은 잠시 수면 아래로 / 낡은 전략 버리고 균형 잡아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나라 안과 밖이 초긴장 상황이다. 그 와중에 대응책을 놓고 극단적인 정쟁이 계속되고 있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이 넘쳐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의 적처럼 대한다. 오늘날과 같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엄청난 규모의 교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완벽한 대처란 있을 수 없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많다. 신천지교회 신도들이 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가 될 줄 누가 예측이나 했는가? 나는 어떠한 정책이 가장 합당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현재로서는 비난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 최선이라 판단하는 타개책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정답은 추후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하나하나 짚어 볼 일이다. 이는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신뢰 수준의 추락현상이다.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정당 간 신뢰, 국민·사회 간 신뢰가 다 포함된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 교수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수준 여부가 이탈리아 지역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큰 차이를 미쳤는지 연구한 바 있다. 신뢰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발전에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 신뢰는 국가발전과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AFK 오간스키 교수는 국가발전이란 단지 수치로 드러난 경제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비용을 제외한 것이라 설파한 바 있다. 신뢰 수준이 낮아질수록 정치적 비용은 높아진다. 국제정치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국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외부 강대국과의 동맹뿐만이 아니라 내적인 균형을 강화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외부 강대국에만 의존하는 사고를 지닌 국가와 국민은 필히 망한다. 이 내적인 균형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에서 신뢰를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일차적인 책임은 더 많은 권한을 지닌 정부에 있고, 그다음은 엘리트와 전문가 집단에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다수를 장악한 그룹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하라는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 국제정치적 의미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민족국가체제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저항으로 국가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정치적 고안물에 다름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글과 같은 근대 민족국가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한 국가들은 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민주제도적 안정성, 공적 인사들의 직업윤리, 정책의 합당성 증진은 필수적 요건이다. 권위주의체제, 특정 지역을 고립시키는 정책, ‘나 홀로 정책’들은 국가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 제한된 자원만을 쓰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신뢰는 추락하고 정치적 비용은 크게 증가한다. 아전인수식 ‘당파적 행태’는 정치적 저항과 대립으로 인해 내적 신뢰의 수준을 저하하고, 민주주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외양은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권위주의적 국가를 강화시킨다. 이는 결국 국가 역량과 안보에 막대한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당장의 안보 현안인 북한 핵문제나 미중 패권경쟁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재인정부 역시 외교안보적으로는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중국 부상에 대한 위협의식도 일시적으로 감소효과를 가져왔다. 중국의 취약성이 잘 드러났다. 세계의 경제적 가치사슬을 재편해 중국으로부터 분리하려는 트럼프의 무리한 정책이 오히려 자연스레 이뤄지는 효과도 가져왔다. 북한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느라 당분간 대외적인 도발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유행했던 오면초가(五面楚歌) 상황이 우리 외교안보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정부는 이 잠시 주어진 기회를 외교안보 역량과 전략을 재편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낡고 효용이 떨어진 것은 과감히 재편하고, 국내적 균형, 신뢰를 재고하기 위한 노력을 가일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