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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 기고] 독일 로펌 헹겔러 뮬러(Hengeler Mueller) 실무수습을 마치고 (2011.10.21)

  • 오혁준
  • 2013-07-30
  • 4285

"4천억원 상당 대출 계약서 무려 220쪽… 엄청난 분량에 질겁"

오혜령(아주대 로스쿨 2학년)


- 독일 로펌 헹겔러 뮬러(Hengeler Mueller) 실무수습을 마치고

1. 들어가며

로스쿨 학생으로서 원하던 실무수습 기회를 갖는 것은 기쁘고도 흥분되는 일이다. 국내 로스쿨로서는 드물게 아주대 로스쿨은 몇몇 해외 로펌과 교류 협정을 맺어 정규 인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평소 독일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로서는 설레는 마음으로 독일 로펌인 Hengeler Mueller의 하계 인턴에 도전했다.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얽힌 채 프랑크푸르트 한복판에 있는 사무실로 첫 출근을 했다. 국제적으로도 최고의 자질을 인정받는 독일 변호사들의 업무처리 과정은 어떠한지, 대륙법의 종주국인 독일의 로펌이 법률시장 개방으로 인한 영미법계 로펌들의 진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2. 독일 로펌 Hengeler Mueller에 대한 소개

Hengeler Mueller는, 독일이 1998년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방한 이후, 영미계 로펌에 의한 시장 잠식으로부터 유일하게 생존한 순수 독일 토종 로펌이다. 2011년 Legal 500 발표 기준, 금융, 자본시장, M&A 분야 등에서 1위 로펌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90명의 파트너를 포함하여 약 250명의 변호사들이 근무하고 있고,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하여 6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영미계 유명 로펌들과는 달리 해외 지사를 설립하지 않으며 각 국의 유수 로펌과 협업관계를 통해 업무를 처리한다. 통합팀 개념(Integrated Team Concept)을 표방하는데, 이는 국제간 거래에서, 협력관계를 이뤄온 각국의 변호사들을 팀으로 구성해 투입하고 Hengeler Mueller가 그 총괄지휘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트너 펌(partner firms)과의 긴밀한 유대와 효율적인 통합팀 개념이 법률 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독일 토종 로펌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킨 정책으로 여겨졌다.

3. 변호사들과의 만남

업무 첫날 금융파트에 배속되었다는 얘기를 듣고선 생소한 분야인데다 외국어로 접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지도변호사들을 소개받고 주지도관으로부터 자신의 금융업무 초기 경험담을 듣고선 오히려 도전의식이 발동했다. 지도변호사는 M&A부문 Partner와 금융부문 Associate였다. 그 밖에 IP부문이나 세금부문의 변호사들과도 여러 차례 점심식사의 기회를 가졌다. Hengeler Mueller의 대부분 변호사들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LLM 등의 과정을 이수하였고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었다. 업무강도도 기대이상으로 높았다. 사무실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야근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법률시장 개방의 시류에서 법조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필자로서는 역량배양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정 시간을 정해 함께 모여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인턴들. 맨 오른쪽이 필자 오혜령.


4. 거대한 담보계약을 접하다.

가. 다국통화 장기대출, 리볼빙 신용 및 담보 대출 계약 (Multicurrency Senior Term Loan and Revolving Credit and Guarantee Facilities)
주지도관과 대면하고선 곧바로 업무가 주어졌다. 무려 273,184,146 유로(한화 약 4,100억원 정도)에 달하는 다국통화 장기대출, 리볼빙 신용 및 담보 대출 계약을 대출시장협회(LMA:Loan Market Association)의 표준계약서와 비교·검토하는 작업이었다. 이 계약은 전 세계에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태양열패널 제조회사와 다수의 은행채권자들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계약서만 무려 220여 쪽에 달하였다. Hengeler Mueller의 의뢰인은 은행채권자들이었다. 처음 접하는 방대한 양의 계약서에다 자세한 정의(definition)규정에 놀라며 계약의 구조파악에만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 관련 후행조건 목록(Conditions Subsequent-List) 업데이트
뒤이어 위 계약과 관련된 후행조건 목록을 넘겨받았다. 계약 상대방이 다국적기업인 관계로 적용되는 준거법별로 후행조건을 분류한 것이었는데 해당 국가만도 10여개에다, 후행조건으로서 각 국가별로 성립시켜야 할 담보계약도 3~6개씩 되었다. 목록 업데이트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각 해당 로펌과 주고받은 이메일, 계약서 초고(first drafts), 수정본(revised drafts), 의견서(comments) 등을 전달받았고, 각 계약서에서 수정될 내용, 의견 합치된 내용, 공증(notarization)이나 아포스티유(apostill) 단계 진입여부 등을 꼼꼼하게 검토하여 빠짐없이 목록에 반영되도록 해야 했다. 철저함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직역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 업무는 실무수습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

다. 선행조건(Conditions Precedent)과 후행조건(Conditions Subsequent)의 부종성에 따른 재분류
또 다른 업무는 선행조건들과 후행조건들을 부종성을 갖는 담보계약(Accessory Security)과 부종성을 갖지 않는 담보계약(Non-accessory Security)으로 분류하여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각 국가마다 법체계가 다르니 이 새로운 목록 작성은 독일법이 준거법인 계약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부종성이 없는 담보계약은 우리 법체계 아래에서는 생경한 모습이라 그 이해가 쉽지 않았다. 관련서적을 보면서 독일 민법상의 토지채무(Grundschuld)와 저당권(Hyphothek)의 차이부터 이해를 시도했다. 부종성 없는 담보계약의 효용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후에 기회가 되면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부분이다.

라. Conference Call 참가
위 계약과 관련하여 실무수습 기간 내에 세 차례의 Conference Call이 있었다. 관련 로펌들과 업무 진행 정도, PoA(Power of Attorney) 문제, 기존담보의 해소와 새로운 담보계약으로의 이양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전체 구도를 꿰뚫고 그 많은 유사한 계약들의 내용과 진행상황을 암기하다시피 파악하고 있는 담당변호사들을 보며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에 대해 재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새삼 법률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견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 자리였다.

5. 공증(Notarization) 절차 참가

단기 주식담보계약의 공증 절차에 참여할 기회도 얻었다. 공증인(Notar)은 계약서에 기재된 공증인, 변호사들의 인적 사항부터 괄호, 부호까지 일일이 언급해 가며 낭독하였다. 중간 중간 양 변호사들이 교정할 단어나 삽입할 숫자 등을 얘기하며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다. 치밀하게 다듬어져 하나의 계약이 완성되는 과정이었다. 지도관은 자신이 처음 해본 공증은 꼬박 이틀이 걸렸다면서, 낭독하는 절차가 계약에서 무엇을 합의했고 어떠한 특약이 있는지 주지시키는 중요한 절차임을 첨언해주었다. 공증절차의 분쟁예방적 기능을 새롭게 상기시키는 기회였다.

6. 독일 부동산 등기부(Grundbuch) 검토

담보 부동산의 등기부를 확인하는 업무를 하면서 독일 부동산 등기부의 구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우리와 달리 표제부 아래를 세 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는 점이었다. 첫 번째 부분(Erste Abteilung)은 소유자(Eigentumer)를 기재하고 두 번째 부분(Zweite Abteilung)은 제한물권 등(Lasten und Beschrankungen)을 기재하는데 사용물권 외에 가등기도 여기에 기재되어 있었다. 세 번째 부분(Dritte Abteilung)엔 저당권(Hypotheken), 토지채무(Grundschulden), 연금부채(Rentenschulden)가 기재되어 있었다. 우리가 계수한 제도이긴 하지만 상이점을 발견하니 어느 체계가 공시 목적의 편의에 더 부합하는지 연구해 보고 싶은 욕구도 생겼다.

7. 인턴 생활

프랑크푸르트 사무실에서는 필자를 포함하여 17명의 인턴들이 근무하였다. 1명의 리투아니아 변호사를 제외하고 모두 독일 각지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사무실은 각기 따로 배정되어 있었지만 일정시간을 정해 함께 점심을 하며 담소도 나누고, 실습정보도 교환하였다. Hengeler Mueller측에서 마련해준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일본 로펌 변호사의 일본 법률시장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은 일본 로펌의 적극적인 헤드헌팅을 실감하게 하면서 묘한 경각심을 일으켰다. 프랑크푸르트 시내투어에도 참가하였는데 그 주제가 ‘프랑크푸르트의 범죄장소(zum Tatort Frankfurt)’였다. 관광명소가 아닌, 범죄장소와 감옥을 둘러보며 범죄내용을 듣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구시가지인 작센하우젠(Sachsenhausen)에서 사과주(Apfelwein)를 함께 하기도 하였고 실내암벽 등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일정 부서가 마련한 브런치 시간에는 일과 중에 해당 부서의 업무도 살펴보고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해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8. 맺으며

낯선 땅에서 접하는 생소한 업무로 4주간의 실습이 여유롭지는 못했지만 귀국하는 마음만큼은 풍성했다. 독일 변호사들의 철저함도 배웠고, 법률시장 개방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만 가졌던 이전에 비해 다가오는 기회로 여겨야겠다는 배포도 생겼다. 영미계 로펌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오히려 왕성한 활동을 하는 Hengeler Mueller 변호사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같은 기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법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비교법적 지식으로 경쟁력을 갖춘다면 굳이 경계심만을 가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치열하게 배우고 열심히 살다가, 소중한 실무수습의 기회를 나눈 인턴들과 같은 팀으로 만나든, 상대방으로 만나든, 다시 조우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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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59916&k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