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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22.08.24] 美·中 극한 대립에 韓 타격 “새 변화 속 기회 포착해야” [한·중 수교 30년… 격동의 동아시아]

  • 김흥규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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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가 경제안보 시대의 격랑에 휘말렸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 수립, 6·25전쟁을 거치며 이념적 적대관계였던 한·중은 1992년 8월24일 수교 후 부분적 갈등에도 한국의 기술과 자본, 중국의 인력과 시장을 서로 활용해 경제와 무역, 인적교류 차원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무역협회에 따르면 양국 교역규모는 1992년 64억달러(약 8조6400억원)에서 2021년에 3015억달러(407조250억원)로 약 47배 증가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1629억달러(219조9150억원)로 한·중 수교 직전 해인 1991년의 10억달러 대비 약 163배나 확대됐다.

 

중국은 지난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3%에 이르는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경제·무역에서뿐만 아니라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동아시아 문제에서도 역내 평화와 안정이 양국 발전의 대전제라는 관점에서 대체로 협력과 협조를 지향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한·중 관계의 패러다임이 전변(轉變)하고 있다. 원인은 동아시아 대국정치의 두 당사자인 미·중의 격렬한 대립이다.

중국은 경제 발전을 통해 G2(미국과 중국)로 올라선 국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은 물론 반도체와 같은 차세대 핵심기술 분야에서 공세적 자세다.

 

미국도 냉전시대 소련에 맞서기 위해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후 계속돼온 협력 노선을 거둬들이고 대결 구도로 전환했다.

 

◆‘安美經中’ 변화 불가피… 韓·中 외교 새 패러다임 찾아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경제안보를 앞세워 쿼드(Quad: 미국·호주·인도·일본의 안보대화체) 체제 구축,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이어 한·미·일·대만의 반도체동맹 칩(Chip) 4 결성에도 의욕적이다.

 

중국은 칩4와 관련해 “큰 시장과 단절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행위”(관영 환구시보)라며 한국에 대한 보복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2의 사드 사태를 예고한 셈이다.

 

중국이 지난해 10월 요소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발생한 요소수 품귀 사태로 한국의 심각한 대중 의존도가 다시 각인됐다.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이 1741개, 70% 넘는 품목이 653개에 이른다는 사실은 양국 관계에서 한국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시장과 원료 수입처의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한진 코트라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은 23일 “중국의 경제보복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국도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다”며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나타난 이슈를 잘 관리하면서도 새로운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경제안보상 문제로 야기되는 미·중 대립이 단발성 이슈가 아니라 향후 한·중 관계를 규정할 장기적이고 상시적인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동북공정, 사드 사태, 김치·한복 원조논란 등으로 나빠진 양국 국민감정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한·중 관계의 후퇴는 북한의 레버리지를 높여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된다.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중국의 경제발전 중시 노선이 만나 비교적 안정적 관계를 유지해온 한·중 관계가 중대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무역 규모·인적교류 수치가 보여주는 양적 성장을 넘어 반도체·배터리 등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공급망) 문제를 감안해 새로운 차원의 질적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경제안보 관점에서 반도체, 전기자동차용(EV) 대용량 배터리 등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9, 10일 이틀 연속 중국 견제를 내용으로 하는 반도체·과학법(미국 지원금 받은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금지)과 기후변화법(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대한 감세 혜택 배제)에 서명하자 중국과 밀접한 국내 업계에 당장 빨간불이 켜졌다.

 

IPEF나 칩4가 과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일본이 소련 등 공산권의 첨단 군사기술 접근을 막기 위해 가동했던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코콤) 식으로 발전할 경우 한·중 관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이와 관련해 22일 서울에서 열린 대사관 주최 수교 30주년 경축 리셉션에서 “양국은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완전한 안정을 유지하며, 국제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는 등의 방면에서 거대한 공동 이익을 가지고 있다”며 “반도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할 미래의 기회는 무한하고 유망하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의 행보를 견제한 것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이런 난감한 상황과 관련해 “한국은 안보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술 등 경제 측면에서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없어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며 “최소한 중국을 적으로 돌리거나 불필요한 충돌은 가급적 피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국은 24일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리는 기념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교환하며 수교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