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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22.06.01] 韓·美 밀착으로 더 커진 中 리스크… 다자외교 활용 전략 바람직 [세상을 보는 창]

  • 김흥규
  • 2022-06-03
  • 221

지난달 2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 수준을 업그레이드했다. 두 나라 대통령은 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을 가치와 경제안보 분야로 확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 데뷔 무대에서 한·미동맹 강화와 글로벌 경제안보 협력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동시에 숙제도 안게 됐다. 한·미 정상이 ‘중국 견제용’ 성격이 강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력에 합의한 데 이어 중국 인권 문제와 대만 문제를 거론하자 베이징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중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윤석열정부가 취임 초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는 고민거리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안보·경제 모두 미국과 밀착하는 한국

한국의 IPEF 참여는 과거 정부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과 경제 공조를 확대하겠다는 명확한 입장 표명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중국 견제 움직임에 가세한 형국이 됐다. 중국 입장에선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이런 기조를 안미경세(安美經世·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라고 강조하지만 중국 매체들은 안미경미(安美經美·안보도 경제도 미국)로 받아들인다.

대만·중국 인권 문제도 한·중 사이의 긴장을 높이는 사안이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인권 상황에 관한 상호 우려를 공유하면서 전 세계에서 인권과 법치를 증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신장위구르,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 문제는 중국이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해 온 사안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선 “인도태평양의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 및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이 담겼다. 대만해협 평화 유지는 지난해 문재인정부 당시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서도 언급됐던 내용이지만 이번엔 ‘인도태평양의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라고 규정하는 부분이 추가됐다. 미·중이 대립하는 주요 현안과 관련해 윤석열정부가 미국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대만해협에서의 중국 활동을 안정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해 왔다.


◆中 매체 “미국에 경도되면 대가 치를 것” 경고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달 22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미국 패권의 앞잡이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위험한 것은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카드로 도발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혼란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본질적으로 분열을 꾀하고 평화를 파괴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안정 유지 중요성 등이 거론된 것에 ‘엄중한 교섭’(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을 제기했다면서 “대만은 중국 영토이며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으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영 언론들도 가세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중국과의 기존 질서를 망가뜨리고 방향을 틀면 양국과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이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매체들도 “한국이 공급망, 안보, 무역, 기술에서 미국의 파트너로서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베이징청년보), “한국이 일본처럼 미국에 경도돼 외교의 틀을 바꾸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선전위성TV)이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中, 사태 추이 지켜본 뒤 보복 여부 결정할 듯

한국이 IPEF에 참여하면서 200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사태의 악몽을 경험한 국내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에선 IPEF 출범 이후 중국이 우리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드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던 자동차 업계도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원료 수급부터 판매까지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전환으로 실적 회복 기대감이 감돌았던 면세점 업계 역시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류다.

일각에선 중국이 이번에도 보복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당장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드 사태 때와 달리 IPEF에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기 때문에 중국이 특정 국가를 상대로 보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로선 IPEF의 핵심 의제만 설정됐을 뿐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참여국들의 협의를 통해 함께 마련해 나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보복에 나서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한·미의 밀착에 속으로는 매우 불쾌하고 불편할 것”이라면서도 “IPEF의 방향성이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고,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제 강화도 일단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당장 강하게 반발하기에는 명분이 충분치 않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중국은 IPEF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자국을 견제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한·중 사이에도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윤석열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것들이 아직 구체적으로 정책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일단 사태 추이를 면밀히 주시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라면서 “추후 윤석열정부가 노골적으로 반중 입장을 구체화했다고 판단되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조치를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리스크’ 관리할 정교한 전략 마련해야

중국과의 갈등은 윤석열정부가 지고 가야 할 리스크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우리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중국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다. 안보 측면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다. 한·중 관계를 세심하게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처럼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할 말은 하겠다’는 식으로 날을 세우는 것도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김 소장은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부터 오는)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윤석열정부의 과제이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외교안보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다자외교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새 정부가 IPEF 같은 다자 관계에선 중국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되, 한·중 양자 관계에선 적절히 수위를 조절하는 외교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입장을 밝힌다면 중국은 정책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면서 “하지만 IPEF 출범처럼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보조를 맞추면서 입장을 밝힌다면 중국이 한국만을 표적으로 해서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9년 7월과 이듬해 6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0여개국이 각각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인권 문제와 홍콩보안법의 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 중국이 이들 국가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 사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