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언론보도

[아주경제 2021.08.16] [탈레반 아프간 점령 후폭풍] 한국 아프간 재건 외교 '헛수고'···美 떠난 자리 中 그림자

  • 김흥규
  • 2021-10-02
  • 344

탈레반 점령에 아프간 떠나는 美...공백 채우는 中中, 파키스탄 고리로 탈레반과 '일대일로' 펼칠 듯왕이, 탈레반 2인자와 아프간 평화·재건 방향 논의美 따라 아프간 재건 참여' 韓, 낙동강 오리알 처지"새로 수립된 탈레반 정권과 적대 관계 되지않게"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한국 외교가 유탄을 맞았다.

한국의 대(對) 아프가니스탄 외교가 사실상 한·미 동맹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서 미군의 일방적인 철군이 한국 외교 당국의 당혹감을 키웠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중국이 채울 것으로 점쳐지며 한국 외교 당국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아프간이 향후 미·중 전략적 경쟁의 새로운 무대가 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남북, 한·일 등 풀리지 않는 외교 과제에 골머리를 앓는 문재인 정부에 아프간 사태 후폭풍이라는 난제가 하나 더 얹힌 모양새다.

 

◆美 공백 채우는 中··· 탈레반과 '일대일로'


1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 탈레반이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사실상 함락하며 카불 국제공항에는 탈출 인파가 몰렸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모든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는 한편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미군이 공항에 몰려든 민간인을 활주로에서 쫓아내기 위해 경고사격을 가하면서다.

미국 등 아프간 주재 서방국 대사관들은 자국 인력을 이미 대다수 대피시켰다. 한국대사관 역시 전날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 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

다만 아프간에 체류 중인 재외국민 1명의 안전한 철수 등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대사를 포함한 일부 공관원이 현재 안전한 장소에서 본부와 긴밀히 소통 중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후 "아프가니스탄에 잔류한 공관원과 우리 교민들을 마지막 한 분까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군 철군에 따른 공백은 탈레반과 함께 중국이 채울 전망이다. 중국은 탈레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진 파키스탄을 고리로 대아프간 영향력을 점차 키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탈레반을 뒤에서 암묵적으로 지원해준 국가가 파키스탄이고 중국과 파키스탄은 현재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함께 펼치고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미군이 아프간을 떠남으로써 자국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을 톈진(天津)으로 불러들여 아프간의 평화와 재건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이 아프간을 일대일로 전략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해상 실크로드다. 파키스탄 등 14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탈레반 역시 경제 개발과 재건 사업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중국과의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윈윈'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

 

◆'美 따라 아프간 재건' 韓, 오리알 신세


이런 가운데 한국 입장만 난처하게 됐다. 한국이 그간 한·미 동맹 강화 차원에서 아프간 재건에 힘써 왔다는 점에서다.

아프간에서의 미국 주도 대테러 정책이 사실상 실패하고 중국 영향력이 급부상하면서 아프간이 미·중 패권 경쟁의 또 다른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정 연구위원은 "기존의 미·중 갈등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과 탈레반의 관계가 안 좋아진다고 하면 한국을 포함한 서방국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한국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 과정에서 과거 한국군 파병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한국 외교 당국으로서는 새로이 수립된 탈레반 정권과 적대 관계로 불편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프간 등 해당 지역에 대한 중국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전략 전개도 힘들어질 전망이다.

정 연구위원은 "중국, 파키스탄과 앙숙 관계인 인도 입장에서 미국 편에 서는 데 대한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인도가 흔들리면 미국 전략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문재인 정부로서는 풀리지 않는 외교 과제에 당분간 고심할 전망이다. 최근 해빙 무드를 보였던 남북 관계는 재차 얼어붙었고 한·일 과거사 갈등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