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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2021.03.24] 동북아 드리운 미중 대립전선…한국은 '눈치게임'

  • 김흥규
  • 2021-04-10
  • 450

北中 밀월 과시…러시아도 연대 가능성

美中 대립구도, 동북아서 뚜렷해지는 양상

각국 합종연횡하는데 韓은 '로키 대응' 일관

 

미국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북한과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한 가운데 북중 최고지도자가 구두 친서를 교환하며 밀월관계를 과시하고 나섰다.

 

러시아 역시 외교장관을 중국에 보내 '한미일 공조'에 대응하는 '북중러 연대'를 예고한 상황이지만, 한국은 동북아에서 뚜렷해지는 대립구도를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구두 친서를 주고받았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 도전·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올 초 개최한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대 세력들'이라는 표현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답신 형식의 구두 친서에서 "국제·지역 정세가 심각히 변화되고 있다"며 "새로운 형세 하에서 조선 동지들과 손잡고 노력함으로써 중조(북중)관계를 훌륭히 수호·발전시키고 두 나라 사회주의 위업이 새 성과를 거두도록 추동하겠다"고 밝혔다.

 

"北中 친서 교환, 같은 편 되겠다는 도원결의"
러시아와도 접촉면 넓히는 北中

 

무엇보다 북중 정상 간 친서 내용이 미국의 한중일 고위급 접촉 직후 공개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일과 협력해 북한·중국에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힌 상황에서 북중의 우호관계 과시는 '한미일'에 대항한 '북중' 연대를 가늠케 한다는 관측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이번 친서 교환이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북중이) 같은 편이 되겠다는 도원결의 같은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북한과 중국은 최근 러시아와의 친선관계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전날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두 장관이 "미국은 일방적인 괴롭힘과 타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멈춰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국에 대항하는 공동전선 구축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북한 외무성 역시 지난 17일 발표한 성명에서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조러(북러) 친선협조의 전통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美, 서구 전통 우방국과 中 제재
韓, 美中 대립구도에 '거리두기'

 

같은날 지구 반대편에선 미국 주도로 새로운 대중 제재가 대거 도입됐다. 미국이 전통 우방인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과 함께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 유린 문제를 제기하며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EU가 인권 문제를 고리로 중국을 제재하고 나선 것은 지난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처음이다. 캐나다 외교부는 성명에서 "이번 제재는 미국·영국·EU와 연대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민주적 가치를 내세운 '미국 주도 그룹'과 이에 대항하는 '중국 주도 그룹'이 각자 세를 불려가고 있지만, 한국은 '로키(low-key) 대응'을 견지하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중 정상 간 친서 교환과 관련해 "향후 북중관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친서만을 두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바라는 문재인 정부가 동북아에서 틀이 잡혀가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중국을 거쳐 한국을 찾는 것 역시, 미국 주도 그룹의 '약한 고리' 공략이라는 '우려'보다는 양국 우호관계 강화라는 '친선'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라브로프 장관 방한이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심화시켜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방한해 오는 25일 본국으로 돌아간다.

 

문 정부의 관련 입장은 결국 미중 대립전선에 포획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이자 외교부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한 강연회에서 "우리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며 "공개적으로 말하기 난처하지만, 참고 참고 기다리다 세계질서 추동에 큰 역할을 한 강대국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나중에 줄을 서면 된다는 게 저의 조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