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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19.08.13] [책 속으로 | 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外

  • 김흥규
  • 2020-03-05
  • 568

북한의 오늘 Ⅱ
‘있는 그대로의’ 김정은을 봐야 할 때

윤영관 엮음, 늘품플러스, 249쪽, 1만4000원.

윤영관 엮음, 늘품플러스, 249쪽, 1만4000원.

언론계 은어 중 ‘야마’라는 게 있다. 야마는 기사의 주제나 방향을 가리킨다. 기자들은 야마에 맞는 사례는 살리고, 어긋나는 주장은 버리면서 사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악마의 편집’이 돼버리는 것이다. 

딜레마가 있다. 어젠다를 선명하게 하려면 취사선택이 불가피하다. 반면 복잡한 현상을 일렬로 세우면 현실을 올바로 반영할 수 없다. 야마가 또렷한 기사가 더 잘 읽히는 것도 딜레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기사엔 ‘뭔 소리냐’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TV에 나와 북한 문제를 해설하는 이들도 이 같은 함정에 빠진다. “문재인 대통령 중재 덕분에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거나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진실은 충돌하는 ‘야마’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거나 지금도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오늘 Ⅱ’는 변화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책이다. ‘방향’을 설정해놓고 ‘단언’하거나 ‘장담’하지 않는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발언하는 폴리페서들의 졸고(拙稿)나 편견(偏見)에 익숙한 독자라면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이 엮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김흥규 아주대 교수가 집필했다. 

2014년 출간돼 심도 있는 분석으로 학계와 연구소, 정부 기관 등으로부터 호평받은 ‘북한의 오늘’ 2019년 버전이다. 김정은 체제하 북한의 변화와 정치전략·경제·사회·군사·핵·외교 문제에 대한 다방면의 분석과 한국 정부를 향한 대북정책 제언이 담겼다. 

필자들은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의지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김흥규 교수는 “북한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강국’의 길에 들어섰다고 믿고 있다”면서 “북한이 국제 무대의 중요한 변수로 남으려면 핵무장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이 핵 보유 자체를 목표로 하는 공세적 핵질주 전략을 지속하는 동시에 단계별 등가교환에 의거한 핵 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봤다. 전봉근 교수는 “김정은은 핵무장을 토대로 한미동맹의 억제와 대남 전면적 수행 체제를 건설 중”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들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시장화 및 개방화가 심화된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대북제재만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단번에 이룰 수 있다든가 심지어는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 제재 만능론은 근거가 희박하다”(김병연 교수)고 지적한다. 

북한의 핵 협상 목표가 핵보유국 지위 확보인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제재만으로는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 없이도 자신의 정권 유지와 경제 발전이 가능하도록, 특히 그가 가지고 있는 안보불안감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흥규 교수는 ‘대항적 공존’을 제안한다. “비핵화가 중장기적 과제로 남겨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 정권 붕괴를 목표로 두기보다는 ‘대항’을 염두에 두고 ‘안보적 균형’을 맞춰가면서 ‘공존’을 추구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