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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9.08.04] 한일 치고받는데 방위비청구서만 들이민 美···혼돈의 동북아

  • 김흥규
  • 2020-03-05
  • 585

격랑의 세계 휩쓰는 외교 난제, 그 중심엔 한국.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세계 외교 전선에 바람 잘 날이 없다. 한국은 2일 현재 북한의 미사일 도발 3연타를 맞은데다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 결정으로 경제전쟁에 본격 돌입했다. 한국을 강타한 외교 폭풍은 더 거세질 전망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외교 난제에 시달리는 건 한국뿐 아니다. 세계 각국의 외교 갈등도 악화일로다. 



원인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국제 질서 재편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지금 국제사회는 근대로 회귀해 ‘각자도생’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 중심으로 움직였던 국제질서의 규범과 규칙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지정학적으로 외교가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첩첩산중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국가 이기주의가 우선인 상황에선 외부 환경에 민감한 한국의 취약성이 더욱 커진다”고 우려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판 자체가 흔들리는 국제 외교 전쟁에서 한국이 만신창이가 되지 않으려면 확전 아닌 수습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연관성이 높은 5대 외교 난제를 짚어봤다.   

① 치고 받는 한ㆍ일…손 놓은 미국은 방위비 청구서만    

 
한ㆍ일 관계를 두곤 2일 양국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이 나왔다.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 조치 강행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생중계로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주 8ㆍ15 광복절에서도 이같은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이 ‘큰 형님’으로 움직여주길 바랬지만 미국은 소극적 역할에 그치는 모양새다. 지난 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갈라 디너자리가 상징적이다. 일본의 화이트국가 조치 강행을 하루 앞두고 미국의 중재를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한ㆍ일 갈등 확전을 미국이 의도적으로 묵과한 결과를 낳았다. 한ㆍ미ㆍ일 3각 동맹의 균열은 심각하다. 미국은 한국을 ‘린치핀(linchpinㆍ핵심 축)’, 일본은 ‘코너스톤(cornerstoneㆍ주춧돌)’이라 부르며 동맹을 강조해왔지만 한ㆍ일 갈등엔 적극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이 적극 나서는 의제는 따로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를 한국이 더 부담하도록 압박하는 문제다. 지난달 23~24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겐 한ㆍ일 중재 메시지가 기대됐지만 정작 그가 집중한 의제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인 방위비 문제였다. 본지 취재 결과 미국은 50억 달러(약 6조원)을 한국에 요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는 올해 2월 양국이 합의한 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금액이다.  

② 북한의 ‘한국 패싱’…발사체 3연타 도발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여왔던 남북관계도 고민거리다. 북한은 지난달 25일엔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데 이어 31일엔 ‘신형 대구경 조종 방사포’를, 이달 2일엔 두 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상으로 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북한에 대한 ‘적(敵)’ 개념까지 꺼냈다. 31일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앞서 국방부는 국방백서에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했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5일 “(미사일 도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엄중한 경고”라며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한ㆍ미가 5일부터 진행 예정인 연합군사훈련 ‘19-2 동맹’에 대한 반발 메시지이면서 한국의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대한 불만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그러나 도발도 한국 맞춤형으로 하고 있다. 단거리 발사체 도발에 집중하면서 미국을 도발하는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작은(smaller) 미사일”이라며 “미국을 위협하는 게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마저 “(미국 본토를 타격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기에 김정은이 약속을 위반한 건 아니다”라고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ㆍ일 갈등이 격화하고 한ㆍ미ㆍ일 공조가 약화하는 상황을 북한이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금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대화해야하는 때라는 판단 하에 남북 관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우려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이 핵능력 고도화에 조용히 박차를 가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교수는 “한ㆍ일 관계로 궁지에 몰린 한국 정부가 기댈 곳은 남북 관계뿐이라는 점을 북한은 십분 활용할 것”이라며 “한국을 더욱 애태우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③ 트럼프와 찰떡궁합 믿는 아베, 이란 파병 美 요청 거절  


미ㆍ일은 최근 국제 무대에서 몇 안 되는 찰떡 궁합을 과시해왔지만 2일엔 달랐다. 미묘한 갈등이 노출됐다. 이란이 갈등의 진원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정부가 이란과 체결했던 핵합의(JCPOA)에서 일방 탈퇴했고, 이후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24일엔 이란과 맞닿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연합체 결성을 목적으로 각 동맹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이란혁명수비대와 해군 등 병력을 배치시킨 상태다.  
 
그러나 일본의 선택은 ‘노(No)’였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2일 복수의 외무성 관계자들을 인용해 일본이 자위대 함선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도 이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80%이상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고 있어 자칫 큰 군사적 분란이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판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미국과 일본의 심각한 갈등으로 보는 건 과대 해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과의 끈끈한 동맹을 기반으로 일본이 미국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긴장시키는 미국과의 잠재 갈등 요소는 또 있다. 주일미군 주둔 비용인 방위비 분담이다. 볼턴 보좌관은 한국에 앞서 지난달 21~22일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에도 일본측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고 한다. 일본측 분담금을 지금의 5배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고 아사히(朝日)가 보도했다.  
 
 

④ 미 vs 중, 新국제질서의 주인 놓고 ‘준 전시 상태’ 

 
심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 상황도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1일 자신의 트위터에 “9월1일부터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약 10%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이 만나 무역협상 재개와 추가관세 보류에 합의한지 약 한달 만에 합의를 깨고 추가관세 부과를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그가 25%가 아닌 10% 관세를 꺼내든 것은, 일단 다음달로 예정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지금 서로 물러날 수 없는 한 판을 벌이고 있다”며 “단순한 관세 전쟁이 아닌 새로운 세계 질서를 두고 준 전시 상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⑤ 한 vs 중, 사드부터 KADIZ 침공까지 긴장의 연속  


한국 정부는 사면초가 신세다. 중국과의 관계 역시 녹록지 않다. 한국 정부는 2017년 중국과의 외교갈등으로 번졌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배치 문제가 봉인됐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년을 끌어온 사드 갈등은 여전히 한중관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ARF 회의에서 참석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사드 문제를 다시 꺼냈다. 재차 거론하며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중국 국방백서에서도 사드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며, 지난 6월 시진핑 주석도 G20 계기로 열린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첩첩산중으로 지난달 23일에는 사상 유례 없이 중ㆍ러 군용기가 동해상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를 침범하면서 한ㆍ중 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중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중국은 KADIZ 진입 자체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한일 치고받는데 방위비청구서만 들이민 美···혼돈의 동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