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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7.11.15.] 한-중 관계회복하고 정상회담 물꼬 튼 ‘전략대화’

  • 김흥규
  • 2017-12-06
  • 1904

[한겨레 2017.11.15.] 한-중 관계회복하고 정상회담 물꼬 튼 ‘전략대화’

한-중 관계회복하고 정상회담 물꼬 튼 ‘전략대화’

 

한-중 정상회담서 ‘각급 전략대화’ 강화키로

외교관, 민간 연구원, 정당 등 다양한 채널 가동

양국 ‘관계개선 선언’도 물밑 ‘전략 대화’ 결과

최고위급 대화 등서 북핵·사드 현안 다뤄질 듯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7월 한-미가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최종 확정한 뒤로 한-중 사이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습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관계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정상회담이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이번 정상회담은 12월 중국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는 만남이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전략대화’가 뭐지?

 

이번 회담에서 두 나라는 ‘각급 전략대화’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전략대화’(strategic dialogue)란 일반적으로 ‘차관급 이상’ 외교관이 주체가 돼, 북핵이나 사드 문제 등 특정한 의제를 논의하는 대화를 의미한다고 외교부는 설명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싱크탱크 등 민간 연구기관끼리의 대화나, 각 나라의 정당 간 교류도 전략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정부가 틀을 만들어 놓은 한-중 사이의 전략대화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 △양국 외교부 국장급 인사·국방부 부국장급 인사의 2+2 외교안보 대화 △국책연구기관 간 합동 전략대화 △정당 간 정책대화 등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이를 ‘4대 전략대화’라 부릅니다.

 

 

한-중 전략대화의 역사

 

앞으로 각급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전략대화는 사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처음 합의한 게 아닙니다. 과거 정부가 중국과 가진 정상회담 결과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5월 한-중은 정상회담을 통해 ‘차관급 전략대화’ 신설에 합의했습니다. 2013년 6월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 부속서’를 도출했습니다. 이때 두 나라 간 전략대화에 관한 내용은 이전 정부보다 구체화됐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의 외교 담당 국무위원간 대화체제를 구축하는 것 외에도 외교장관 상호 교환방문 정례화 및 핫라인 가동, 외교차관 전략대화 연 1회에서 2회로 확대, 외교안보대화, 정당 간 정책 대화, 국책연구소 간 합동전략대화 연례적 개최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전략 대화 채널이 보다 다양화, 구체화되긴 했지만, 애초 목표대로 내실있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부터 한국 내 사드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2016년 한국 정부가 배치 결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한-중 교류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2013년 6월 한-중은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1회에서 2회로 늘리는 데 합의했지만, 대화는 2014∼2015년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고, 지난해 2월(7차)과 올해 6월(8차)에 한번씩 열렸습니다.

 

 

실장-차장-특사-특보로 이어진 물밑접촉…전략대화 물꼬 터

 

이번 정부에서는 전략대화 등 한-중 교류가 실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요? 현재 분위기는 매우 고무적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가 사드 문제로 경색된 한-중 관계를 회복하기로 공식 발표한 ‘10·31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는 정의용 실장, 남관표 2차장, 새정부 출범 직후 중국 특사로 파견된 이해찬 전 총리,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등이 여러번 공식,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외교 당국자와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예컨대 이 전 총리는 5월18일 중국 특사로 파견된 뒤 6월, 7월, 9월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갔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을 접견했습니다.

 

4대 전략대화 중 하나인 국책연구기관 간 합동전략 대화가 2015년 12월 3차 대화를 끝으로 열리지 못한 가운데 한-중 싱크탱크 간 전략대화와 정당 간 교류도 활발해질 기미가 보입니다. 싱크탱크 같은 민간 연구소 간의 교류는 정부 간 공식 외교 채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구소들이 함께 여는 이 교류 행사에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공식 채널에 준하는 전략대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9월21∼22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한국 싱크탱크 동아시아재단과 중국 판구연구소가 2차 한·중 전략대화를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 이해찬 전 총리가 기조발언자로, 문정인 특보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관계자도 참석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한-중 외교 당국자 간의 만남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겠죠? 중국 사정에 밝은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은 “이번 한-중 관계 회복은 정부 간 소통 채널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민간이 전략대화의 형태를 취한 다양한 물밑접촉을 가진 결과”라며 “(실장, 차장, 특보, 특사 등) 정부 정책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국회의장 직속 동북아 평화협력 의원외교단은 지난 2∼4일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 출신으로 의원외교단장을 맡고 있는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장예쑤이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 푸잉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외사위원장, 탕자쉬엔 전 외교부총리를 비롯해 중국공산당 관계자들과 만나 대화했습니다. 의원외교단은 중국 외교 관계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우리 국회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넓게 해석하면 4대 전략대화 가운데 하나인 정당 간 정책 대화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국 공산당 초청을 받아 이달 30일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 정당 고위급 회의’에 참석합니다. 추 대표는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한-중 정당 간 교류가 더욱 활성화, 정례화 될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는 누가?

 

앞으로 한-중 전략대화에서는 누가 주체가 돼, 어떤 내용을 논의하게 될까요? 전문가들은 일단 최고위급 전략대화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중이 “북핵 문제 해결을 뒷받침할 기제로 4대 전략대화에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전략대화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사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간 대화”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의 외사영도소조는 중국의 최고 지도부가 모여 국가 외교 정책의 근간을 결정하는 종합 숙의기구입니다.

 

앞으로 최고위급 전략대화가 이뤄지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양제츠 중국 외사영도소조 판공실 주임과 호흡을 맞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한-중 관계가 극적인 해빙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계기인 ‘10·31 합의’를 앞두고 정의용 실장은 최소 여러차례 중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중국 인사들과 북핵 문제 등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앞으로 최고위급을 비롯한 각급 전략대회에서는 북핵, 사드를 비롯한 한-중 간 외교 현안이 모두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은 “이번에 한-중이 발표한 각급 전략대화는 지금까지 물밑에서 진행된 비공식 전략대화를 심화하자는 취지”라며 “이런 대화 채널이 공식, 정례화하고 12월에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면 시 주석이 (내년 2월에) 평창에 올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