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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7.05.04.][이슈라인] 50년 만에 최악 치닫는 北·中…트럼프·시진핑 공조 통하나

  • 김흥규
  •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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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라인] 50년 만에 최악 치닫는 北·中…트럼프·시진핑 공조 통하나

北 “中, 붉은선 넘어서”… 중국 실명 직접 거론하며 맹비난

북·중 관계가 50년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례적으로 중국이라는 실명을 거론하며 대중 비난전에 나섰다. 통신은 3일 ‘조·중(북·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 내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김철이라는 인물의 논평을 통해 최근 미국과 대북 공조 행보를 보이는 중국을 향해 “붉은선을 넘어서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칼빈슨호·세종대왕함 연합훈련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와 우리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앞에서부터)이 3일 한반도 근해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통신은 중국을 향해 “자신들과 전혀 상관도 없는 우리의 핵 문제에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 못지않게 거부감을 드러내며 조·중 관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는 데 대하여 격분을 금할 수 없다”, “상대의 신의 없고 배신적인 행동으로 국가의 전략적 리익(이익)을 침해당해온 것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북한을 비판해온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그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 보도를 예로 들며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바라지 않는다면 중·조 친선과 핵 포기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극히 도전적인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며 “이것은 주권국가로서의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이며 합법적인 권리와 존엄, 최고 리익에 대한 엄중한 침해”라고 비난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대해서도 “온갖 비난을 다 들으면서 미국에도 양보하고 아부했지만 남조선(한국)에는 중국을 겨냥한 비수인 싸드(사드)가 한밤중에 기습배치되여 참으로 어리석은 거인을 비웃고 있다”고 비꼬면서 “중국은 조·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오늘의 무모한 망동이 가져올 엄중한 후과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북한이 중국에 대해 이웃나라나 대국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닌 중국이라는 국명을 거론하며 악담을 퍼부은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보다 격이 낮은 조선중앙통신의 개인 필명 논평이라는 형식으로 수위를 조절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 후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상당해 보인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4일 이와 관련해 “현 북·중 관계는 50년 만에 최악”이라며 “이 정도로 관계가 악화한 것은 1956년 김일성 제거 시도가 있었던 때와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시기 딱 두 번뿐”이라고 진단했다. 북·중 관계는 중·소와 연계된 연안파와 소련파가 김일성의 실각을 기도했던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문화혁명 기간인 1967년 홍위병들이 김일성을 실명 비난했을 때 최악이었다. 1960년대 중·소 대립 상황에서 북한은 양국을 비난할 경우 국명 대신 교조주의(중국), 수정주의(소련)라고 표현했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에도 중국 국명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지는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중국이 주변국들과 함께 북한에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기에 북한이 강하게 반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내기 위해 군사적 개입 불사 입장까지 북측에 통보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북한의 불만이 폭발 직전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북·중 물밑접촉에 따른 기싸움 가능성도 거론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중) 북한대사 소환 등 구체적 행동 조치가 없어 중국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기싸움으로 보인다”며 “기싸움 성격이라면 실제로는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비난에 대해 “오랫동안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으로 상황의 시비에 따라 유관 문제를 판단하고 처리했다”며 중국은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환구시보는 논평이 나온 지 3시간여 만인 4일 새벽 인터넷판인 환구망을 통해 즉각 대응했다. 환구망은 “북한은 핵 문제와 관련해 비이성적인 사고에 빠져 있다. 이런 주장에 맞설 필요가 없다”면서도 “북한에 우리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고, 레드라인이 어디까지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전례 없이 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北, 국제적 고립”… 美 전방위 압박 나선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고강도 대북 추가 제재에 나선다. 미 하원은 4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어 북한을 국제금융망에서 완전 퇴출시키고, 북한의 원유 거래 등을 차단하는 사상 최강의 제재 조치가 담긴 ‘대북 차단제재 현대화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 이 법안은 하원 외교위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돼 본회의에서도 통과가 확실시된다. 

미 상원이 하원의 법안과 유사한 법안을 마련해 통과시키는 등 입법 절차가 끝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 법에 근거해 독자적인 대북 제재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하원은 이 법안과는 별개로 국무부에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결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이날 채택한다. 또 북한이 지속적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별도 결의안도 채택한다.

새 대북 제재 법안에는 북한의 달러화 거래를 금지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금융망 접근을 전면 차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국 은행이 북한 금융기관의 대리 계좌를 보유하는 것도 금지된다.

북한의 광물, 석탄, 원유, 석유제품 거래 또한 봉쇄된다. 러시아, 카타르, 쿠웨이트 등에 있는 해외 기업이 외화벌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면 제재를 받는다. 북한 선박의 운항을 규제하고 외국 항만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북한 주민의 강제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어진 생산품을 수입하는 것 또한 금지된다. 도박·음란 사이트 운영 등 북한의 온라인 상거래가 차단되고, 전화·전신·통신 서비스 등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도 규제를 받는다. 

미국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완전 고립시킬 목적으로 전방위 제재법을 제정해 시행할 예정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제 조치가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려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등 제3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은 이미 기존 대북 제재법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이 유보해온 제3국 제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