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언론

언론보도

[동아일보 2010.10.07] [다시 포효하는 중화제국] <5> 지금이 패권외교 할 땐가 - 내부 논란

  • 김흥규
  • 2015-10-21
  • 1040

決不當頭(결부당두): “결코 우두머리가 되려하지 말라”는 덩샤오핑의 당부
네오콤 “왜 美비위 맞추며 사나” 온건파 “마찰외교 결국 손해”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1997년 세상을 뜨기 전 중국의 미래지도자들에게 도광양회(韜光養晦·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와 결부당두(決不當頭·결코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미 돌돌핍인((달,돌)(달,돌)逼人·신속한 발전으로 기세가 등등해져 남에게 압력을 가하는 모양)하는 ‘패권외교’의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15년도 채 안 돼 중국 지도부가 이런 당부를 잊은 듯하다.

중국 지도부의 이런 자세를 두고 최근 중국 내부의 학자 및 전문가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강경파는 “중국의 높아진 위상과 국력에 맞게 노(No)가 필요하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온건파는 “그런 행동이 주변국의 반발을 사는 등 중국에 하등의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 갈수록 높아지는 민족주의 정서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는 일본 고유의 영토로 (중-일 간)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간 나오토 일본 총리)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다.”(원자바오 중국 총리) 

4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화해를 위해 전격 회동한 중-일 양국 정상은 센카쿠 열도를 놓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처럼 양국 정상이 또다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갈수록 높아지는 자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최근 들어 국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민족주의 내지 애국주의 정서가 급격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에도 댜오위다오 부근에서 나포된 중국 어선의 선장이 일본 당국에 구금된 이후 장기간 석방되지 않자 중국 주요 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잇따랐다.  

중국인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2008년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스스로 중국의 저력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160여 년간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청나게 커진 경제력과 더불어 중국 인민의 민족주의 정서가 중국 ‘패권 외교’의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강경파 “경제력 걸맞은 영향력 당연”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중국 내 현실주의자의 대표이자 중국판 네오콘(미국의 신보수주의자를 지칭)인 ‘네오콤(네오콘+코뮤니즘)’의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옌 교수는 “군사력 강화 없는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적인 급부상)는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중국은 미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비위를 맞추고 중국위협론을 불식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중국위협론은 중국이 진정으로 강대해질 때 비로소 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칭화대의 자오커진(趙可金) 국제관계학원 교수도 “중국의 경제적 파워가 커진 만큼 당연히 외교정책도 그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오 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성과가 전략적 우위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았다”며 “국제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외교 전략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최근 “중국을 돕는 우정 있는 친구라는 미국에 대한 환상은 올해 집중 폭발한 각종 충돌로 깨졌다”고 말했다.

인민해방군 현역 장성들은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중국 국방대 전략연구소 양이(楊毅) 해군 소장은 지난달 중-일 댜오위다오 분쟁 와중에 “중국의 외교 조치가 거의 한계에 도달했지만 군사상으로는 일본에 전혀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마치 군사적 대응도 불사해야 한다는 듯한 주장을 폈다.

이 밖에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와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전문가 견해 소개나 사설 등의 형식을 빌려 간접적으로 중국 정부의 강경 입장을 뒷받침했다.


○ 온건파, “중국위협론, 중국에 손해”  

중국 내 온건론의 대표격인 원로학자 우젠민(吳建民) 외교학원 원장은 댜오위다오 문제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달 23일 “중국이 주변 국가와 영토 문제로 마찰을 벌이지만 서로 협력할 때 얻는 공동이익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강경론을 주도하는 군부에 대해서도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버럭 화를 내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최근 100년간 약국(弱國)으로 지내오다 형성된 심리”라며 “주변국의 중국위협론만 고조시켜 결국 중국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말 화평굴기론을 처음 주창한 정비젠(鄭必堅) 전 런민대 교수이자 중국 전략 및 관리연구회 회장은 “대국굴기와 화평굴기는 다르며 중국은 주변국과의 화평굴기를 통해서만 기존의 패권국가와 차별화된 독자적인 발전 노선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일부에서 민족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결코 중국 전체 인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류장융(劉江永)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도 일본 정부가 중국인 선장을 석방한 지난달 24일 “중국 언론이 이 사건을 마치 중국이 일본에 승리한 것으로만 묘사하면 일본 내에 대중 강경론이 득세하게 돼 양국의 장기적인 발전에 되레 좋지 않다”고 충고했다.


○ 중국 정부도 강온 고민 

이처럼 중국 외교의 기본 노선을 둘러싸고 전문가는 물론이고 인민과 지도부 사이에서도 이견이 노출됨에 따라 중국 지도부가 앞으로 주요 외교 현안에 대처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주요 파워 그룹 내에서도 이견이 나타나면서 중국 내부의 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없지 않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중국이 보여준 이례적인 강공책은 외교부의 견해와는 달리 군부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정부가 과거처럼 언론 통제를 쉽게 할 수 없어 민심 기류에 따라 중국 지도부가 어쩔 수 없이 강경책으로 갈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존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여론이 확산되는 것은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美겨냥 ‘우주-사이버-잠수함 핵무기’ 선택과 집중 ▼

패권국의 지위를 결정하는 데 군사력은 어느 요소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력은 아직 미국에 열세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국 국방대 교수인 장자오중(張召忠) 해군 소장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에야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에 이어 5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은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특정 분야, 즉 우주무기, 사이버 무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국의 우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육군 100만 명을 감축하고 핵전략미사일부대인 제2포병부대를 창설한 중국은 지난해 10월 건국60주년기념 열병식에서는 핵을 탑재한 사거리 1만4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LBM 등을 선보이는가 하면 1월에는 대기권 밖에서 진행되는 미사일 요격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핵잠수함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사이버 전력도 세계 최강급이다. 우리 군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해커 5만 명과 사이버부대 250개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이처럼 3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미국전(戰)을 대비한 준비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영토가 멀리 떨어진 양국의 특성상 군사대결을 벌인다면 3개 분야의 무기체계로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 공군은 최근 IL-78 공중 급유기까지 갖춰 수호이(SU)-27과 수호이-30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3000km로 확대했으며 항공모함 건조에도 착수했다. 군 관계자들은 “이러한 전력이 일본 등 인근 국가를 목표로 한 전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전면적인 대결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 교수는 “3개 분야에서 어느 쪽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이 모두 승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심각한 타격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