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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0.08.26] 김정일 전격訪中…후계구도 목적?

  • 김흥규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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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해 86세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에 불러놓고 왜 갑자기 중국행 특별열차를 탔을까? 안보 부서 당국자는 26일 “김정일이 선발대도 없이 3개월 만에 다시 방중한 것은 체제와 직결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도 김정은으로 알려진 후계 구도를 매듭짓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정은 ‘세자 책봉’에 앞서 중국에 소개하기?

북한에서 44년 만에 열리는 당 대표자회의가 2주 앞(9월 초)으로 다가왔다. 북한은 이번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에게 ‘조직 비서’ 등 핵심 당직(黨職)을 부여하거나 최소한 후계를 위한 인적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2주 앞두고 전격 방중해 중국측에 정상회담 의제를 설명했다”며 “이번에는 당 대표자회의를 2주 앞둔 시점인 만큼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중국측 동의와 지지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박사도 “중국측에 공식적으로 후계자 결정과 향후 일정 등을 알려주고 암묵적 지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당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최근 시·군 당대표회(의)들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반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중관계가 주종관계도 아니고, 카터 전 대통령이 와 있는데 후계문제라면 방중을 하루쯤 연기 못할 이유가 없다”며 “후계문제 때문에 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도 “북한에선 ‘센놈’(중국)한테 뒤통수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며 “주체를 강조하는 북한의 김정일이 김정은을 (중국에) 인사시키기 위해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일이 이번에 김정은을 데리고 갔다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중국 수뇌부를 만나느냐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뇌부를 만나지 않을 경우, 김정은 소개를 위한 방중이라기보다 김일성 유적지 ‘성지순례’ 성격이 강할 것이란 관측이다.

◆김일성 유적지 ‘성지순례’?

이번 김정일의 방중은 그 경로가 예전과 다르다. 지난 5차례 방중 때는 모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을 지나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엔 지린성(吉林省)으로 들어가 김일성 주석이 다녔던 위원(毓文)중학교를 방문했다. 지난 2월 김영일 당 국제부장이 사전 답사했던 곳이다. 지린성에는 김일성이 공부했던 학교와 일제 때 전적지 등이 적지 않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김 부자가 위원중학교에 갔다면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쇼’일 것”이라며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보름 뒤면 후계자가 되는데 할아버지 얼이 서린 곳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28일은 북한의 ‘청년절’(83주년)이다. 청년절은 김일성이 청년 시절(1927년) 지린에서 조선공산주의 청년동맹을 창립했다고 북한이 선전하는 날이다. 한 고위탈북자는 “‘청년 대장’으로 불리는 김정은이 청년절을 맞아 할아버지의 청년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이 청년절에 맞춰 귀국할 것이란 추정도 제기된다.

올해 북한은 체제 전환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국회) 대의원회를 소집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 ‘김정은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을 국방위 위원에서 부위원장으로 승진시켰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에서 두 달 간격으로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적은 없었다”며 “5월 초 김정일 방중 이후 북한 내부에 뭔가 급박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장성택의 라이벌로 알려진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장성택 승진 5일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는 “체제 전환기를 맞은 북한은 천안함 국면 탈출 등을 위해서도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고, 중국도 G20 등을 앞두고 북한이 계속 ‘사고’를 저질러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며 “북·중 모두 김정일의 방중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