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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04.01] 국민공감대 기반한 외교안보정책 추진하라

  • 김흥규
  •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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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을 가늠할 인수위가 출범했다. 인수위 인적 구성, 윤 캠프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 과거 정권들의 관행으로 보면, 일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전면 부정(Anything but Moon)하는 방향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외교안보2.0 버전이 아니냐는 우려스러운 비판이 벌써 개진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사드 관련 발언, 선제타격, 한·미동맹에 대한 언어구조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는 기존의 윤 캠프를 대표한다고 믿어지는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이나 표면에 드러난 다른 전문가들의 언어와도 사뭇 결이 다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인식구조와 언어가 그대로 배여 있어, 윤 당선인 이면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부터 과거의 국제정치 인식과 정책으로 대한민국이 직면한 새로운 국제정치 대변환의 시대와 초불확실성에 과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제기가 일고 있다. 선한 의도와 이상적인 가치 추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로부터 배운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국제정치는 종종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방향은 다르지만 문재인 정부와 또 다른 유사 결과를 벌써 배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 시기 한국 외교가 당면할 외교안보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일단, 미·중 전략경쟁은 더 고도화되고 제로섬 게임적인 선택의 압박은 강화될 것이다. 두 번째, 북한 핵·미사일 능력은 크게 제고되어 이제 방어가 어려워졌다. 북한은 군사적으로 더 대담해질 것이다. 윤 당선인 진영에서 제안한 한국형 아이언돔이나 3축 체계의 구축은 대응책으로는 허점도 많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달성하기 어렵고, 윤 캠프에서 언명한 대로라면 남북 간 대립과 충돌은 증폭될 것이다. 세 번째, 한·일 갈등의 해소가 생각보다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이미 한국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전략적 시야를 가지고 있어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21세기형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이 큰 숙제가 될 것이다. 네 번째, 한·미동맹을 포괄적인 동맹으로 강화하는 조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중 관계에 상당한 긴장과 충돌을 유발할 개연성이 크다. 그 대가는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장 큰 도전은 이 한·중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가 여부일 것이다. 다섯째,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국제정치의 이합집산은 가속화되고 불확실성이 더 증대했다. 미국이 상정하는 민주 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과 같은 단순 구도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미국이 추진하는 쿼드 강화나 경제번영 네트워크의 작동도 불확실해졌다. 금융과 경제 불안정성, 에너지·식량·원자재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도 시장·통상 국가이면서 자원 부족 국가인 한국에는 큰 도전이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자유주의적 미국 패권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이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새로운 과제이다. 한·미동맹이 그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미국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을 뛰어넘는 비전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외교의 시대를 열어젖혀야 한다. 한국이 새로이 획득한 ‘강국’이자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비전과 안배가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은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중은 향후 10년 본격적인 경쟁과 대결을 위한 역량을 축적하려 준비하는 중이다. 우쿠라이나 사태로 인해 예상보다 빠르게 냉전을 넘어선 강도의 군사적 갈등과 충돌이 가능한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양대체제론, 중국의 천하3분론, 러시아의 4대 세력권의 국제정치관이 충돌하고 있다. 한국은 그간 미·중 전략적 협력시기에 향유하였던 전략적 모호성을 더 이상 누리기 쉽지 않은 환경에 직면해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간의 편승형 외교안보전략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국민 공감대 확산을 통해 한국 외교안보의 원칙 설정과 자율적인 공간의 확보를 전제로 유연성을 결합하는 실용적인 자강의 외교안보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정학적 단층선상의 국가여서 언제든지 국제적 분쟁과 파쇄지대로 전락이 가능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분단국가로서 평화적 해결원칙을 유지하고 군사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시장 통상국가로서 시장 확대와 다자주의, 자유항행 원칙,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지지해야 한다. 자원빈곤국가로서 국제적 공급망의 연결과 자원 확보는 국가 핵심이익에 속한다. 중강국 국력을 가진 국가로서 지역 세력관계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급격한 세력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편향적 대외정책에는 신중해야 하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성에 적극 참여하고, 수동적·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로서 자유, 민주, 인권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단 중강국의 한계상 이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의 전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쉽고 명료한 답을 추구하기보다는 편승, 자강, 균세(均勢)의 정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국력은 자강-동맹-국제연대의 총합으르 구성되지만, 이 시대는 자강 전략이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전략적 고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는 국민의 공감대에 기반한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역사적 교훈은 아무리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단합된 국가는 강대국의 위협과 침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열된 국가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대선 경쟁시의 당파성에 입각한 정책들은 이제 재고하여야 한다. 불과 0.7%차로 대선에서 승리한 정부가 마치 100%의 위임을 받은 것처럼 정책을 입안하거나 휘둘러서는 안된다. 특히 검증되진 않은 외교안보 분야는 소수자의 인식과 수준에 의해 전횡되어서는 안된다. 그 비용은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된다. 정권의 실패로 귀결된다. 국민들이 제시한 정언명령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협치하라는 것이고, 공감대를 강화하는 정치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라는 것이다. 외교안보 영역에서 역대 정권은 갈수록 당파성이 강화되었고, 소수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이어지는 이 부정적인 유산을 극복하기를 바란다. 부처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여야를 넘어선 전문가들과 민의에 귀 기울이고, 소통과 토의 활성화를 통해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초불안정과 불확실성으로 특징짓는 새로운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방안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윤석열 시대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