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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20.12.29] [김흥규의 한반도평화워치] 미·중 경쟁 앞날 불확실…한국, 양국과 연대 동시 추구해야

  • 김흥규
  • 2020-12-30
  • 271
패권 경쟁 시기 한국의 선택

2020년은 국제정치적으로 대혼돈의 해였다. 코로나19가 요동을 쳤고, 굳건해 보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다. 2020년 전과 후의 국제정치는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이고 대륙·해양 세력의 중간국인 한국
세력 전이나 강대국 패권 경쟁 시기에 막대한 피해 입어
전략경쟁 격전장 동아시아는 군비 경쟁과 불신 격화 예상
어떻게 위기 관리하고 생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 절실해


21세기는 미국의 힘과 세계 자본주의를 상징하던 뉴욕의 트윈타워 붕괴와 더불어 시작됐다. 거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미국 자유주의 패권시대는 2008년 미국발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힘과 에너지를 소진했다. 자유주의 패권 질서를 지지하던 미 국민의 의지는 크게 흔들렸고 ‘미국우선주의’ 주장이 주류사고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미국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인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이자 기존 국제질서의 수정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연임 제한 규정조차 철폐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미국에 순응하기보다는 2049년까지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의 꿈을 이루고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았다.
 
2020년은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시작됐다. 스페인 대독감 이후 거의 100년 만에 인류가 직면한 세계적 차원의 바이러스 대유행이었다. 대유행은 미·중 전략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면서 신냉전의 시작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미·중은 세계적 위기에 직면해서도 전혀 협력할 수 없었다.
  
미국, 금융위기 겪으며 에너지 소진 

미국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자유주의의 업적이던 다자 제도와 체제가 무력화됐다. 모든 나라는 각자도생 국면에 내몰렸다. 2020년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미·중 간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은 최대 승자가 됐고, 미국은 최대 패자가 됐다.
 
중국은 초기 코로나바이러스 제공국으로서 세계의 비난과 조롱을 한 몸에 받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성과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방역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경제는 세계 주요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유지한 나라가 됐다. 내년에는 8% 이상 경제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은 2000만 명에 육박하는 감염자와 34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올해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다. 파괴된 미국의 시스템과 자신감을 복원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9년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0년에 발생한 또 다른 사건은 조 바이든의 미 대통령 선거 승리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승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이든은 이제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다시 자유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리더십 복원을 선언했다. 기후변화, 감염병, 핵확산, 인권 같은 인류의 보편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 미국의 회복력과 잠재력의 발양을 희망한다.
 
역대 정권의 대외 전략

역대 정권의 대외 전략

그러나 미국 역사 초유의 트럼프 선거 불복은 향후 바이든 시대가 절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예고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마도 코로나19의 상흔으로부터의 회복과 중산층 약화로 인한 양극화, 트럼프의 제도적 파괴로 인한 국내 혼돈을 다루는 데만 해도 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할지도 모른다. 각자도생에 들어간 국제 정치의 악마적 이기심도 미국의 리더십 행사를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 지금은 중국발 변수보다도 미국발 변수가 더 우려스럽다.
 
전형적 안미경중(安美經中) 국가로서, 미국과의 동맹을 기저에 놓고, 미·중 전략협력 구조에 안주했던 한국으로서는 이 현실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내년에 국제 정치 상황이 더 개선되리라는 낙관론은 현재로써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미·중 전략경쟁은 이제 상수가 됐다. 다음으로 미·중, 미·러 등 강대국 간 전략경쟁은 배타적 국가 전략의 추구를 더 격화시키면서, 나머지 국가들에 선택을 압박할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 포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 돼버렸다. 넷째, 미국의 리더십 약화는 미국의 지원에 바탕을 둔 한·일 갈등의 해소가 간단치 않음을 말해준다.
  
미·중 전략경쟁은 이제 상수
 
동아시아 지역이 미·중 전략경쟁의 격전장이 되면서 군비 경쟁과 불신의 격화, 갈등과 군사적 충돌의 장으로 전락할 개연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남중국해는 물론이고 대만, 이제는 한반도로 스멀스멀 그 영역이 확대될 조짐이다. 북한 핵무기를 한동안 안고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향후 다가오는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더 절실해졌다. 한·미 동맹을 만능으로 알고 살아왔던 우리에게는 아직도 더 이상의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미·중 전략경쟁의 세계는 기존 냉전과는 다르다. 미·중은 누구도 세계를 양분할 정도로 충분한 정치·이데올로기·경제 역량을 구비하고 있지 않다. 미국 패권에 기초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계는 이 혼돈과 불안정성, 새로이 형성해야 할 국제질서 사이에 놓여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끼이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놓인 중간국이다. 이런 국가들은 세력전이나 패권 경쟁 시기 가장 막대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지정학의 저주가 담긴 국가군에 속한다. 이 불확실성에 대비한 전략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려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날은 어두워지고 폭풍우는 몰려오지만, 든든한 길동무는 찾지 못하고, 들판에 홀로 서 있는 형국이다. 
 
미국 내에도 대중 처벌주의자·협력주의자 공존
미·중 내부에도 대외정책 결정을 위한 다양한 전략 사고가 존재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진영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실무 관료들과 전통적 자유주의자인 친위 보좌진 중심으로 외교·안보 고위직을 채워나가고 있다.
 
미국 의회의 미·중 워킹그룹 공동의장인 릭 라슨 의원에 따르면 의회 내에도 대중 처벌주의자와 탈동조주의자, 협력 모색주의자들이 공존한다. 이들 사이에 대중 정책에 대한 방법과 목표에 대한 공감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방적 위계질서적 정책 결정의 이미지를 갖는 중국 내에도 적어도 네 가지의 전략사고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 중국을 사회주의 강국이라 여기는 전통파이다. 둘째,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덩샤오핑이 제시한 도광양회 외교를 해야 한다는 신중파이다. 셋째, 중국은 새로이 부상하는 강국으로 미국과의 전면 갈등은 피하면서 핵심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신흥 강국론자들이다. 넷째, 중국은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강국이 됐고, 미·중 전략경쟁의 승자는 결국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강대국론자들이다.
 
후진타오 시기에는 신중론자가 주류 사고였으나 시진핑 시기에는 강대국론자들의 목소리가 크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신흥강국론자들의 입장이 강화됐다. 국내 정치의 영향으로 미국 내 변수가 더 커 보이고, 중국은 조심스레 신흥강국론과 강대국론 사이에서 밀당하고 있다.
 
정책은 결국 어떤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성향들이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정책에 반응할 것이다. 한국 외교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우리 운명을 타개해 나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플러스 섬(plus-sum)’ 논리를 전제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결미연중(結美聯中) 플러스’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