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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중앙일보 2020.09.22][시론] 미·중 신냉전 틈바구니 속 '생존의 지혜'는 외교력이다

  • 김흥규
  • 2020-10-12
  • 287

북한과의 민족화해 공조는 한계
제3의 외교 공간과 기회 모색을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적으로 곤경에 빠져있다.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렵고 점점 악화할 것 같아 더 문제다.그 원인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중(反中) 안보·경제 연대 전략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미국이 그동안 추구하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입각한 패권 유지 정책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협력 기조를 버렸다.

미국 중심주의와 무역 보호주의를 과감히 추진하고, 대중 정책은 전략적 경쟁으로 전환했다. 중국과의 탈동조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반중 안보·경제 연대 전략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와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플러스’ 구상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오는 압박이 엄청 컸다. 중국과 사드로 갈등하고, 일본과의 위안부 관련 합의는 국내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러시아와는 소원하고, 미국의 대중 압박은 점증하고 있었다.

더구나 남북 관계는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국제정치학에서 이러한 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크게 동맹을 강화하거나, 정치적 통합과 경제력 증대를 바탕으로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혀 새로운 방식인 민족 화해와 공조를 통해 어려움을 돌파하고자 했다. 남북 공존을 내세워 잠시나마 ‘2018년 한반도의 봄’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인 외생 변수 즉, 미·중이 전략적 협력 기조를 유지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남북한은 공히 이러한 외생 변수를 넘어 민족 공조로 외부 압력을 넘기에는 턱없이 역량이 부족하다.

상호 심각한 신뢰의 결핍과 안보 불균형의 심리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심 외생변수인 미·중 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악화했다. 이제는 ‘신냉전’ ‘제2차 냉전’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최근 정책에서 엿보이듯이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여전히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에 기반을 두는 듯하다. 한국 정부가 제 자리에 머무르기엔 국제정치가 너무 빠르고 압도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 중심주의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가치에 입각한 대중 안보·경제 동맹의 옛 기치를 꺼내 들었다. 대중 압박은 경제와 무역을 넘어 과학·기술, 외교·안보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

한국은 당장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압력을 받고 있다. 신냉전의 국제정치 환경에서는 단 한 번의 오판으로도 경제와 나라 운명이 흔들릴 판이다.

최근에는 쿼드 플러스 가입 문제가 불거졌다. 쿼드는 앞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구상으로 제기됐던 카드다. 쿼드에 가치를 공유하는 3~4 국가(한국·뉴질랜드·베트남·필리핀)를 추가해 중국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신기술과 힘의 우위에 있고 공세적인 미국 편에 서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은 어느 한 나라가 망하는 게임이 아니다. 강력하고 최대의 시장 수요를 지닌 중국은 여전히 성장하면서 우리의 가장 인접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깊어간다.

다행인 것은 신냉전의 세계가 과거처럼 양대 진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냉전적인 미·중과 이를 우려하는 나머지 국가군으로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우리의 외교 공간과 기회가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던지는 엄청난 위험에 대비하고, 기회의 공간은 최대한 열어젖혀야 한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남북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외교에 힘을 실어주고, 외교 공론의 장을 활성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