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아주인칼럼

석유문제 해결 위한 인식의 전환

NEW 석유문제 해결 위한 인식의 전환

  • 구자영
  • 2008-07-22
  • 31689

국제유가는 올해 첫날, 첫 거래서부터 100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130달러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금년 들어서만 30%쯤 오른 셈이다. 유가는 지난 5년간 5배 가량 올랐다. 이제 200달러 시대를 대비해야 할 필요성마저 논의되고 있다. 가히 제3의 석유위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가 예측이 중요하다. 수요증가, 공급감축, 그리고 투기 등 세 가지 요인 중 주도 요인을 미리 안다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마저 점차 부질없는 일이 되고 있다. '세계화 현상'을 대신해 '자원민족주의' '천연자원 가치 재평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급등에 동반해 식량, 금속 등 천연자원 가격이 동시다발적인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2차 산품(産品) 불평등교환에 따른 종속(從屬)' 체제의 붕괴 여부가 향후 모든 천연자원 시장변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종속'이란 불합리한 자원가격 때문에 그 수출국(개발도상국)들이 공산품 수출국(선진국)들에 영원히 뒤처지고 결국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일부 중동 산유국들이나 러시아가 석유부문 외국자본투자를 거부하는 것은 전형적인 '종속체제' 탈피 시도이다. 이들은 유한한 자국 석유자원의 증산에 의한 단기이득 추구보다 장기 가격상승 추세 유지를 원한다. 그래서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증산을 꺼릴 수 있다. 지난 60년간 실패한 종속 탈피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세계사적 중대 실험이다.

 

선진국들의 대응 역시 기민하다. 이들은 에너지 안보를 국가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유가급등 대응차원만이 아니다. 종속관계가 변하면 문명사적 관점에서 자본(Capital)의 개념이 변한다는 점에 유의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 등 인위적 화폐로 평가되는 인공자본 중심 체제가 후진국이 주도하는 천연자원 가치를 포용하는 천연자본 체제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석유시장 변화는 수급여건 변화와 투기세력 개입 등 기존 요인들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 이후를 결정하는 거대한 시대 흐름에서 새로운 유가결정 요인이 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석유전략은 비효율적이라기보다 맹목적이었다. 국내 시장의 비효율성을 국내 소비과정에서만 찾아왔다. 당연히 원인 규명 미흡으로 귀결되고 흐지부지 끝났다. 지금 휘발유의 소비자 가격에서 원유 도입비용과 유류세가 각기 4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산유국들과의 가치 공유 영역 확보를 통한 원유 도입조건 개선과 정부의 유류세 부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고유가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산유국과의 가치 공유 노력 없이는 거대한 세계경제질서 변환과정에서 기민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유류세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 없이는 고물가, 저성장이라는 디플레이션 회피대책을 수립할 수 없다.

 

우선 소비자가 원하는 유류세 인하는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정부재원 감소보다 민생에너지 비용부담 때문에 소외계층이 더 못살게 되는 '에너지 빈곤' 현상을 더 걱정해야 한다. 그 대신 유류세를 대체하는 탄소세의 점진적 도입을 적극 검토하여 탈(脫)석유-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경쟁국들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실속 있는 자원외교를 단기 물량확보보다 장기 비전 정립 차원에서 확대해야 한다. 이래야만 에너지정책 실패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선진경제체제 '혁신' 효과를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 조선일보 2008.06.04 기고-